어리비친 시간

메이플

베타x알파

 

 

 

Written by VC

 

 

 

 

 

 

 

 

그것은 거울세계를 벗어나 발을 딛은 녹지의 땅에서 일어난, 작은 헤프닝.


무슨 크로스헌터라던가 하는 요상한 집단에게 덜컥 발목을 붙잡혀 리프레 전 지역을 한 바퀴 도는 와중이었다. 여신의 눈물들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나날에 아닌 척 해도 조금은 질려있었던 알파는, 자연이 싱그럽게 빛나는 땅에서까지 남이 시키는 일을 해야 하는 거냐고 투덜대면서도, 억지로라도 맡겨진 일을 나몰라라 내팽겨치지 못해 지도를 따라 걸었다. 확실히 넓고 생동감이 넘치는 곳이었다. 이 마노라는 녀석을 잡으려면 여기를 지나 미스틱 게이트라는 걸 찾아서…


" 야, 베타! 뒤쳐지지 말라니까? "
" 이것 봐, 알파, 폭신폭신해. "

 

한소리 하기 위해 뒤를 돌아본 알파는 웬 털뭉치 하나를 가슴에 꼭 안고 있는 베타를 발견했다. 뭔가 싶어 보니 그냥 털뭉치가 아니라 양이었다. 그것도 벗어나겠다고 발버둥치는 게 보일 정도로 기운찬 녀석이었다. 제법 덩치가 큰데 용케 들고 있다 싶었다.


" 안 무겁냐, 그거? "
" 응… 못 들 정도는 아니야. "


느릿하게 대답하는 얼굴이 즐거워보여 알파는 혀를 차면서 몸에서 힘을 뺐다. 하긴, 음침한 거미의 손아귀에 내둥 갇혀있었으니 살아 움직이는 것 하나하나에 시선을 빼앗기는 게 당연했다. 거울세계에도 소통이 되는 이들이 있었지만, 작은 세계라도 둘러볼 틈도 없이 여신의 눈물을 찾기 위해 조사하고 싸워야했으니까. 이렇게 보면 재수없는 군단장의 소굴에서도 제 성격을 죽이지 않고 잘만 돌아다니던 알파 쪽이 더 유한 상황이었던 것 같기도 했다. 아, 물론 어느 쪽이 더 안 좋은 조건이었는지 따위 따져봤자 의미는 없지만.


" 아무튼, 그만 부비적대고 얼른 와. 해 지기 전까진 다시 마을로 돌아가야 할 거 아냐? 그리고 적당히 안 하면 그 녀석 숨 막혀 죽겠다. "
" …아. "

 

얼마나 꽉 안고 있었는지, 그제야 허망하게 숨을 내쉬며 베타가 힘을 풀자 축 늘어진 몸뚱아리가 흐물거리며 허공에 매달렸다. 베타가 아쉬운 얼굴로 양을 내려놓으려고 허리를 숙였을 때였다.


퍽.


묵직한 타격음이 알파의 귓전을 때렸다. 이 근방에는 양들의 무리가 많았다. 개중에는 염소처럼 뿔이 크게 돋아난 개체도 있었고, 그것들이 단단한 바위에 뿔을 부딪혀대는 것을 길을 지나며 종종 보았다. 그때 나는 소리는 어디까지나 무생물에 가하는 충격의 여파였다. 지금처럼 소리를 흡수하는 듯한 건…


" 베타? "


황급히 돌아본 것이 무색하게, 베타는 양을 내려놓느라 허리를 굽힌 자세 그대로 멀뚱히 알파를 보고 있었다. 꿈뻑. 자신과 꼭 닮은 눈동자가 눈꺼풀 아래 사라졌다 나타났다.


베타는 그대로 털뭉치로부터 손을 떼고, 몸을 돌려 제 뒤에 있는 것을 들어올렸다. 메에에에! 걸걸한 울음소리가 놀라 자지러졌다. 둥글게 뿔이 말린 양이었다.


" 너, 괜찮냐? "
" 뭐가? "
" 방금 걔가 너한테 돌진했던 거 아냐?  "
" 어, 맞긴 한데 별로 안 아프고… "
" 허… "


여신의 눈물을 하나씩 찾아 피엥에게 보고를 할 때마다 그녀가 분석해주는 자신들의 몸 상태에 대해 듣긴 했었지만, 애당초 자신은 길고 가는 도를 사용하고 베타는 두껍고 무거운 대검을 사용하니 스탯의 차이야 그러려니 흘러넘겼더랬다.

 

 

-

 


그때 투다닥, 연이어 무언가가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 …! "

 

한 치의 과장도 없이, 퉁, 하는 소리와 함께 알파는 낮은 동선을 그리며 앞쪽으로 밀려났다. 알파의 뒤쪽에서 느닷없이 달려온 건 색이 거뭇한 양이었다. 역시나 둥글게 뿔이 말려있었고, 베타가 들고 있던 양이 메에- 하는 애처로운 울음소리를 보내는 것으로 보아 친구였나 싶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꼴사납게 구르진 않았어도 다소 엉성하게 착지를 한 탓에 옆의 나무 줄기에 기대어 선 알파가 쿨럭 기침을 하며 몸을 가눴다. 얼마 전 골드라벨 나이트 시리즈를 맞춰서 그런가 어디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은데, 황급히 몸을 튼 덕에 비껴맞은 허리가 욱씬거리기 시작했다. 옷을 들춰보면 분명 멍이 들어있지 않을까.


어머머, 갈수록 우리 베타는 늠름해지네요~ 오히려 알파 님 쪽이 더 가녀리신 것 같아서 이 피엥, 눈물이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건 이거대로 좋지 않은가 싶기도 하고………

 

다소 톤이 높은 피엥의 목소리가 뇌리에 울려퍼지는 건, 결코 지금 이 순간 알파 역시 그녀에게 동조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 알파, 괜찮아? "
" 하… 야, 너 진짜 무거운가보다. 어떻게 난 여기까지 밀려나는데… "


알파는 어이를 상실하고 말을 잇지 못했다.

 

 

-

 

알파가 왜 그러는지 이해하지 못한 베타였지만, 그가 자꾸 강조하듯 반복하는 '무겁다'는 말이 어쩐지 신경을 긁는 통에 우뚝 멈추어섰다. 그녀는 앞서 걸어가는 알파를 보았다. 자신과 똑같은 붉은 의상. 민소매라 드러난 팔뚝은 절대 가녀리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전체적으로 슬림한 체형인데다 키도 작은 편이 아니라, 얼마 전 책에서 읽었던 남성미가 물씬 풍긴다고 하긴 힘들었다. 베타는 그 책에 쓰여있던 남성다움의 외적 조건(책에는 상징이라고 쓰여있었지만, 아무렴 어때)들을 머릿속에 하나씩 열거하기 시작했다. 큰 키, 우람한 체구, 터져나올 듯 풍성한 근육, 날카로운 눈매, 기타 등등등… 그 중에서 알파에게 해당되는 게 몇 개나 있냐고 한다면, 음.


베타는 멀어져가는 알파를 위에서부터 한 번 훑어보았다. 일견 집요한 그 시선에 알파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아무리 봐도, 알파는 남성스럽지 않았다. 힘도 베타보다 약하고, 저런 양의 공격에 쉽게 밀려나고, 검도 얇고. 알파는 그것을 스피드를 주로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라피스나 라즐리나 옵션은 모두 체력과 힘에 맞추어져 있었다. 같은 조건인데 다른 형상. 아니 오히려 베타 쪽이 더 남성다움에 가깝지 않나, 무심코 생각하곤 저도 모르게 입술을 비죽였다. 스스로가 여자라는 자각이 별로 없는 베타지만 이상하게 방금 전의 생각은 자기 자신에게 무척 실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

 


" ?! "


번쩍, 알파를 안아올린 베타가 힘차게 발을 내딛었다.


어어어? 이건 무슨 상황이지? 흐트러진 무게중심을 잡기 위해 베타에게 (받침목 용도으로) 손을 내밀었던 알파는, 왜 그녀가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을 안아들고 달리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것도 이 자세는 악명높은 공주님 안기잖아?


" 야, 너 뭐하는…! "
" 쉿, 들키겠어. 우리들만으론 저렇게 수가 많으면 힘들 것 같아. "
" 그건 나도 알아! 그게 아니라 이 자세…! "
" 알파 발목 다쳤잖아? 괜찮아, 얼른 마을로 돌아가서 치료하면 돼. "
" 아니, 야! 말 좀 들어! "

 

알파가 울부짖었지만, 베타는 더는 말을 않고 달리기만 했다. 뒤에서 둘을 쫓아오는 해골바가지들이 그르렁거리는 괴성을 내는 통에 알파의 당황 서린 항의는 묻혀버렸다. 베타가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리고 귀환 스크롤을 쓸 때까지, 알파는 베타의 품에 터덜터덜 안겨있어야 했다.


후에 알파가 회상하기를, 어엿한 청년 하나와 두 검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다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가뿐한 표정으로 나아가는 그녀는 역시 자신과 같지만 같지 않은 존재로구나, 새삼 깨닫게 되었다고. 

 

 

 

 

 

 

 

 

 

 

 

─────

프리드일지 새챕터 열린 기념으로 오랜만에 프리은월이나 써볼까! → 쓰다보니 왠지 프렌즈스토리 기반으로 나인하트+은월의 조합이 툭 → 새 창 열고 맘잡고 쓰려는데 생각해보니 지금 999마리 때려잡고 있는 건 제로잖아? → 아오 알파 왤케 한 대 맞았다고 뒤로 툭툭 밀려, 베타는 맞은 느낌도 안나는데 → 베타가 묵직한 건가.. 아냐 알파가 가벼운 거다, 같은 시간의 초월자인데 뭐야 이 차이는 → 그리하여 지금 이 조각글이 툭

 

나도 참 단순하구나'_'...

' > 메이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데몬/ 냉장고를 열었더니 썰 3.5  (1) 2015.06.27
프리은월/ 냉장고를 열었더니 썰 3  (0) 2015.06.07
프리은월/ 냉장고를 열었더니 썰 2  (0) 2015.06.03
프리은월/ 냉장고를 열었더니 썰  (0) 2015.05.28
0~1(3)  (0) 2014.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