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몬/ 냉장고를 열었더니 썰 3.5
썰 이어서,
언제나처럼 구어체 주의.
데몬&데미안 형제 및 검은조직 전반.
" 형, 천천히 좀 가. "
" 서둘러. "
데몬은 주위를 살피며 경계를 늦추지 않고 동생의 손목을 잡아당겨. 동생, 데미안은 형이 무얼 그리 급박하게 행동하는지 몰라. 소문으로만 듣던 수사본부에 처음으로 들어가보았지만 별 거 없던 걸. 데미안은 형이 정확히 어느 조직에 어느 지위에 있는진 몰라도 대충 얼마나 유명한 조직에 중간 이상은 하겠거니 짐작해. 형은 절대 가족 앞에서 그런 티를 안 내지만 데미안은 워낙 눈치가 빠르거든. 소문을 알음알음 주워모아 조각을 맞춰보면 어렴풋이 감이 오지. 데몬은 항상 데미안을 손에 쥐면 부서질 유리공예품 마냥 여리게 보는데, 데미안도 사지 멀쩡하고 또래 학우들 사이에선 제법 악명 높거든. 일진을 표방하진 않아도 숨은 권력자처럼 마음만 먹으면 평범한 학생 하나 왕따로 몰아 학창시절을 망칠 만한 그런 위치라는 거야. 알 거 다 아는데 아직도 어린애 취급하는 형이 못마땅해. 한참을 시내를 끌려가던 데미안이 마침내 형의 손을 내팽겨쳐.
" 아진짜 형. 그 경찰들 소굴이랑 벌써 몇 블럭은 떨어졌거든? 걔넨 아직도 정신 없을 텐데 뭐그리 급해? "
다소 투정이 섞인 신경질에 데몬은 멈춰서서 동생을 내려다봐. 성장기인 데미안이 매일같이 쑥쑥 크고 있긴 해도 아직 데몬의 우월한 신장에 미치진 못했어. 데몬은 이걸 어떻게 다뤄야 하나, 한숨을 푹 쉬어. 혈육에게만은 풀어지는 얼음 같은 눈동자에 한심함과 걱정이 반쯤 섞여 스쳐지났어. 동생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어. 그렇다고 조직과 관련된 일을 떠벌떠벌 말해줄 수도 없고, 어떻게 잘 포장해서 경고해준다 해도 한창 사춘기인 데미안이 순순히 따를 리가 없지. 맡은 일은 칼같이, 그것이 얼마나 잔혹하고 어려운 일인지 관계없이 누구보다 정확하고 신속하게 처리하는 일솜씨로 검은조직의 간부에까지 오른 데몬이었지만, 가족을 대하는 데 있어서는 서투른 형에 지나지 않았어.
" 잔말 말고, 당분간 통학 루트를 벗어나지 마. 수업 빼먹지 말고. 대학은 가야할 거 아냐. "
걱정이 한가득 담긴 말은 높낮이가 없는 어조 탓인지 퉁명스러움조차 느낄 수 없이 무미건조하기도 해. 칫, 데미안이 혀를 차곤 입술을 깨물어. 그럼에도 제 손목을 재차 잡아끄는 데몬을 또다시 거부하지 않는 건 데미안 역시 형이 얼마나 저를 생각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야. 데몬의 말을 끝으로 두 사람 사이 대화는 더이상 없었어. 데몬은 마을 구석구석을 몇 번 돌다 데미안을 집에 데려다줘.
" 형은? "
" 당분간 못 들어올 것 같아. "
데미안이 말없이 형을 쏘아보고 쾅, 방문을 닫고 들어가. 데몬은 소리 없는 한숨을 내쉬고 집을 나서지.
*
데몬은 경찰과 엮이는 걸 좋아하지 않아. 범법자 중에 그렇지 않은 양반이 어딨겠냐만은, 붙잡혀 형을 치르는 것 이전에 인간적으로 그들과 얽히는 게 달갑지 않아. 그들은 선을 표방하고 대낮을 활보하는데, 밤의 뒷세계에 익숙해진 데몬으로선 그게 퍽 유별나게 느껴지거든. 실은 데몬이라는 한 인간의 성향이 그리 악하지 않은 탓이 커. 비정하고 흉악한 명성을 떨치고 있는 건 사실이야. 그러나 그건 자의가 아니라 지극히 타의에 의한 것이야.
물론 최초의 순간, 그는 사람을 죽였어. 그가 죽은 이는 어머니가 타계한 이후 유일한 친척이랍시고 나타나 그들 형제의 재산을 가로챈 숙부였어. 원인이야 무엇이든 살인, 그건 분명하고 객관적인 사실이지. 살인을 저지른 자의 선택은 크게 셋으로 나눠볼 수 있을 거야. 자수하거나, 가책을 느끼며 숨기려 들거나, 잘못된 길을 선택해버리거나. 데몬은, 그 우발적인 범행을 감추려 했어. 범행 장소가 평소 데몬의 행실과는 연관지어 볼 수 없는 유흥업소의 뒷골목이었으니 은폐는 쉬웠지. 아니, 쉬울 예정이었어.
하필 그 시각, 그 장소를, 한 사내가 지나치지만 않았더라면 말이야.
*
사내는 무척 흥미롭단 얼굴로 골목을 들여다보았어. 때는 심야로 깊어가는 밤, 거리의 형형한 네온사인 불빛이 들어오지 않는 사각지대의 골목길을 투시라도 하듯 뚜렷하게, 시체를 뒤로 숨긴 데몬을 응시하고 있었어. 단순한 고양이의 기척에 던지는 시선이 아닌 걸, 데몬은 알아차렸어. 사내를 경계하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지. 여차하면, 목격자 역시.
뭐든 한 번 한 짓을 다시 반복하긴 쉬운 법이잖아. 데몬이 조용히 사내의 눈치를 살필 때였어. 그가 입을 열었어.
" 도움이 필요한가? "
침묵. 데몬은 사내의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며 그를 노려보았어. 설마 단순한 취객으로 착각하여 던지는 말, 인가. 그렇다면 침착을 가장하여 거절을…
" 그 사체는 제법 커서 토막내지 않는 이상 유기는 어려울 걸. "
사내의 말이, 살인자의 침착을 꿰뚫어. 그제야 데몬은 사내의 눈을 보고, 깨달았어. 저 자는 이미 어둠 속에 있다는 것을.
*
가끔, 손을 피로 적시고 그 비린내를 잊기 위해 간부의 술자리에 참여하여 도수 높은 양주부터 위에 쏟아붓는 날. 하필 주량도 평균치를 훌쩍 넘어 테이블 위를 점유한 술병이 밀려 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마시고 비로소 취기가 도는 그 때에 이따금 생각하곤 해. 그 날 사내를 만나지 않았다면 자신의 인생은 달라졌을까? 하고. 하지만 그런 회한 어린 생각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얼마나 덧없고 불가능한 일인지 알고 있는 이성에 의해 금세 끊겨버려.
사내가 이끈 조직에 들어가 닥치는대로 그의 명을 받아 움직인 덕에 데몬은 이례적인 속도로 간부에 올랐어.
사내의 정체는 누구도 몰랐어. 그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간부들은 알고 있었지만 명령은 언제나 일방향인 탓에 아랫사람이 위에 선 자를 감히 가늠할 수가 없지. 다만 간부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 사내가 모습을 드러내면 그들은 환호하거나 경외했어.
최근 몇 년간 간부들 중에서도 연줄도 없이 보잘 것 없이 여겨지는 데몬을 유독 신뢰하는 듯한 사내의 모습에 몇몇이 그를 적대하는 태도를 보이곤 했어. 데몬은 사내의 신뢰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어. 사내는 인간과 사물을 구분짓지 않았거든. 게다가 그는 단순한 재미로 간부들 사이의 알력다툼에 계기를 심어주고 있을 뿐이니까. 사실 이것도 정확한 표현은 아니야. 사내가 의도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이 그의 지시에 의미를 부여하며 따르는 것이거든. 사내의 지시, 판단, 행동… 모든 것에는 의도가 결여되어 있어. 그저 사내, 그 이외의 타인, 조직, 세상까지 확장되는 압도적인 영향력만이 존재해.
*
전신이 검은색 일색인 사내는 검은 남자라 불렸어. 조직 내에선 보스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게 신입이거나 멋모르는 말단이었고, 간부들부터가 그 지칭을 사용하지 않으니 아랫사람들도 상사를 따랐지. 하지만 아무래도 이상하잖아? 보스가 이러하셨습니다, 보스의 명이 등등 대신에 검은 남자가 이리 하고, 검은 남자의 명령이 등등등. 어느 순간부터 조직원들은 사내를 그분이라고 칭하기 시작했어, 무슨 종교 교단처럼 말이야. 이를 수상쩍게 여긴 수사관들이 사내의 존재를 파고 들다 발각되는 일도 생겼어. 신기한 건 본보기로 처리된 대부분을 제외하고 몇몇 살아남은 자들 모두 현재 조직의 일원이란 거야. 공통점은 길고 짧은 시간 동안 사내를 마주했다는 거고, 개중에는 이 마을에 수사본부가 생긴 초창기부터 수사관들을 지휘하고 나이가 들어 은퇴한 후에도 후배들을 가르치는 교육자로서 자리매김하던 한 노인도 포함되어 있었지. 그는 현재 간부의 지위에 있어. 데몬을 아주 눈엣가시처럼 여기며 검은 남자에게 비틀린 충성을 맹세했지, 한 마리의 뱀과 같이.
*
조직에 대해 외부에 조금이라도 정보를 흘리는 건 금기사항이야. 간부들이 그리 정했고 유출 시엔 배반행위로 강주하여 그에 걸맞는 보복이 가해지지. 그래서 데몬은 제가 무슨 일을 하는지 유일한 혈육에게조차 말하지 않아. 동생은 형의 직업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모양이지만 데몬은 데미안을 이쪽에 끌어들일 생각이 전혀 없어. 그는 데미안이 무사히 학업을 마치고 평범한 직장을 가져 행복하게 살길 원하지. 이 시대의 여느 평범한 가족이 가족을 생각하듯.
이번 데미안의 행동은 위험했어. 검은 남자는 제가 우두머리로서 있는 조직에 이렇다 할 규율을 정해놓지 않았지만 드물게 간부들에게 언급한 적이 있어.
" 수사본부를 건드리지 말도록. "
늙은 뱀 아카이럼이 언제까지 말입니까, 물었어. 검은 남자는 잠깐 생각하나 싶더니,
" 당분간은. "
불명확한 기간을 붙였어.
간부 중에서 제멋대로의 성향이 강한 소녀가 왜? 반문하자 영문 모를 대답이 돌아왔지.
"재미있는 볼거리가 생길 것 같거든. "
그와 동시에 검은 남자의 입가에 띄워진 미소를, 데몬은 아직까지 잊을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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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보니 새삼 데몬이 참 매력적이구나.. 어둡어둡하게 글을 이끌어주는 이런 캐 흔하지 않아'ㅎ'
분명 처음 의도는 이게 아니었을 텐데 벌써 산으로 향하는 이 썰, 대체 어디까지 갈 것인가.
다음부턴 프리은월 진도나 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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