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비친 시간

이름은 하나도 안 나오지만

프리은월로 천사의 울음

 

 

 

 

 

 

 

 

만약 네가 노래를 한다면, 그건 천사의 울음소리와 같을 거야.
천사를 본 적 있어?
음~ 그 비슷한 거?
그것도 날개만 달렸겠지 뭐. 하얗겠지만.
저 백조는 알고 보면 오리보다 더 시끄럽다잖아. 그런 느낌일까.
내가 오리같다고? 꽥꽥, 꽥, 해줄까.
푸하하. 그냥 비유야, 비유. 좀더 적절한 게 안 떠올라서... 빙산의 일각같은?
사람은 누구나 겉과 속이 다른 법이니까.
삐딱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그래 인정해, 비유가 나빴어. 흠흠. 어쨌든 간에, 그래서 결론은, 상상해봤다는 거지. 그만큼 내게 소중하고, 아름답고, 슬플 거야.
슬픈 건 좋은 게 아닌데.
하하... 그러게. 하지만 그럴 것 같아.

 

 

 

 

 

 


검은 머리카락의 끝부분을 만지작거리면서 너는 말했다. 내게 좀더 힘이 있으면 너를 여기서 나가게 해줄 텐데.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밍밍한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이 좋았다. 언제나 사람 좋게 늘어진 눈썹과 살짝 올라간 입꼬리가 아닌 척 하면서도 파르르 떨리는 게 좋았다.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우리의 이야기는 언제나 하나의 현실로 귀결되었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은 양,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를 굉장히 중요한 것처럼 말을 이어붙였다.


검은 날개. 등 뒤에 달린 이것은 이 몸 하나 간신히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없었다. 여타 애완인간들처럼 앙증맞은 장신구로 치기엔 너무 컸고, 그렇다고 아예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전투나 비행에 써먹기엔 작고 약했다. 게다가 많고 많은 색 중에서 하필 검은색. 밤의 빛깔로 젖은 날개가 쓸모있다고 느낄 때는 오로지 네가 예쁘다고 말해주는 순간이었다.

 

 

 


흰 날개의 하늘의 사자가 울면 마을에 길조가 찾아온다. 전설처럼 설화처럼, 전해져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흰 날개의 천사는 이 땅에선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이 마을처럼 오지에 있는 곳은 더욱더. 그래서 마을의 촌장이 하늘의 사자가 태어난다는 알을 어디선가 구해왔을 땐 모두가 기뻐했더랬다. 귀한 연이 오셨구나, 하고.


그렇기에 알이 깨지고 기대에 찬 시선들이 일제히 한곳을 응시할 때, 희기는 커녕 새까만, 가느다란 빛줄기마저 삼켜버리고 마는 검은 날개가 파르르 떨렸을 때. 경악과 함께 공포로 물든 시선들이 나의 첫 기억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기지개를 펴며 몸을 흔들면 타닥타닥 흰 반점이 떠오르는 것이 밤하늘의 별같다고, 네가 처음 말한 때를 기억한다. 그날은 마을에서 고생하여 모은 상단의 짐이 먼 땅으로 운반되던 중 도적떼의 습격을 받고 유실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날이었다. 평화롭다면 평화로운 마을이었지만, 땅 끄트머리의 폐쇄적인 이곳에서 모두의 불행을 짊어질 만한 소재는 날 적부터 모두가 불안한 눈초리로 쳐다보던 검은 날개뿐. 전부터 마을서 가장 지혜로운 노인의 만류로 미뤄져왔던 불행이 터져나온 듯, 나는 마을 끝 커다란 나무에 매달린 새장 속에 갇혔다. 이미 오래 전에 죽은 나무는 그 크기만은 여전히 하늘에 닿을 듯 장대했고, 나무로 된 창살은 쇠만큼이나 단단했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찾아온 네가 한참을 헤매다 올라오는 길을 발견했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모두가 꺼리는 날개를 펴고 나 자신의 몸뚱아리를 감싸고 있었다. 사람들의 두려워하는 시선이 멀찍이 떨어진 것이 이렇게나 무서울 줄은 몰랐으니까. 네가 나무껍질에 치인 생채기를 달고 내 앞에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날개를 치우지 않았다. 너는 나의 두려움을 읽었다. 그럼에도 물러나지 않고 언제나처럼, 내 곁에 있어주었다.


항상 뒤에 축 늘여놓고 보여주지 않아서 몰랐는데, 네 날개는 꼭 밤하늘의 장막같아. 이 작은 흰 점들은 은하수의 별이고.


네 말이 내게 닿았다. 빼꼼, 검은 깃털 사이에서 나타난 검은 눈동자를 마주하며 네가 웃었다. 드물게 날개를 달고 태어나는 인종을 하늘의 사자라고 부른다면, 어째서 너의 등에는 날개가 달려있지 않을까. 나는 네가 날개를 달고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너의 푸른 눈동자와 따스한 머리색이 돋보이는 순백의 날개를, 머릿속에서 너의 등 뒤에 달아보았다. 천사가 있다면 그것은 너의 모습이어야 했다.

 

네 노래를 듣고 싶다. 그건 천사의 울음소리같을 거야.


너는 그리 말하며 살풋 웃었다. 흰 날개의 천사가 노래하는 것은 길조이니, 검은 날개의 천사는 흉한 것을 불러오리라. 그로 인해 핍박받은 나의 목소리를 이리도 듣고 싶어하는 건 너뿐이었다. 네가 원한다면 나는 기꺼이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노래를, 너를 위한 노래를. 그건 결코 천사의 울음소리도, 새의 지저귐에도 비할 바 되지 못할 테지만, 오로지 너만을 위하여. 네가 이 마을 촌장의 아들이 아니었다면, 장차 마을을 다듬고 다스릴 지도자의 기상이 아니었다면, 나는 네가 이따금 장난스레 건네는 도망치자 말을 받아들이고, 네가 내미는 손을 잡고 이 나무 감옥으로부터 벗어났을까. 감히 너를 위해 노래를 부르며, 세상에 어떤 재앙을 가져오더라도 너의 행복만을 바랐을까.


오늘도 차가운 나무 새장 속에서, 벙어리처럼 입도 뻥긋하지 못하는 가축이 되어 너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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