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네은월/ 그 안드로이드에게 파편을
*키네시스+안드로이드 은월
*인겜 기반
*이어질진 모르겠습니다.............
1
오랜만에 맞이하는 도심의 공기는 후끈했다. 키네시스는 나무 그늘 아래 잠시 멈춰 서 땀을 훔쳤다. 저쪽이 워낙 사시사철 살기 좋은 날씨라 몰랐는데, 이쪽은 사계가 참 뚜렷한 기후였다. 하복 입을 계절이잖아. 셔츠 소매를 걷어올리던 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납작한 스크롤을 하나 펼쳐 부채질했다. 염동력이란 참으로 편리한 힘이다. 손부채질하느라 없는 기력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고.
정겨운 도시에 돌아오긴 했지만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한가롭게 간식을 즐기며 빈둥대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아도 상황이 따라주지 않은 탓이다.
“ 3시간이면 충분하지? “
“ 하루도 아니고 3시간? “
“ 가봤자 딴짓밖에 더 하냥? 잔말 말고 서두르라냥. “
얼굴 마주한 지 몇 번이나 됐다고 벌써 이세계의 술사를 파악한 것처럼 구는 네로가 성가셔 통신구를 꺼버렸다. 저쪽에서 일방적으로 말해도 이쪽이 안 들으면 그만이지.
그가 서있는 곳은 운동장 가장자리의 쉼터였다. 아직 수업이 끝나지 않아 시야는 그저 휑했다. 볕이 쨍할 땐 마른 모래만 봐도 눈이 아팠다. 키네시스는 선글라스라도 하나 챙길 걸 그랬나 후회하며 그늘에서 그늘로 느릿느릿 이동했다. 큼직한 그늘을 두 번 지나치고 나니 계단 턱에 닿았다.
신수국제학교. 그의 모교와 더불어 M시 학교의 양대산맥. 사립영재학교와는 십수 블럭 거리로 떨어져 있지만, 학교간 연계 이벤트를 여러 번 준비하며 오가길 수 차례다보니 이렇게 덜렁 찾아와도 낯설지가 않았다. 얼마 전 난데없는 문자를 날렸던 녀석이 여기 교복을 입고 있었지… 키네시스가 저쪽 세계에서 단련하는 동안 자연히 이쪽의 수호는 배제될 수밖에 없었다. 소문을 듣자하니─왜 제 고향의 소식을 이세계에서 전해들어야 하는지 드는 의문은 넘어가자─ 저쪽에서 흘러들어온 마력이 문제가 되어 한동안 소란이 일었다던가. 먼저 파견되었던 모험가 측에서 이제 다 해결되었다고 호언장담했더란다.
그러나 문제가 있으니 내가 여기 왔지. 키네시스는 천장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손으로 잡아 꺼뜨렸다. 키에에엑… 찢어질 듯 가느다란 소리가 음소거되며 사라졌다. 결론만 말하자면, 꼼꼼하지 못한 모험가들이었다는 소리다. 엘리니아 마법사들의 안목도 다시 볼 일이라며 키네시스는 혀를 찼다. 그에게 주어진 미션은 학교에 남은 더스트를 채집해오는 것이었다. 하는 김에 말끔히 청소하면 더 좋고. 인력 낭비라는 자부심은 겸사겸사 휴가라고 생각하며 가라앉혔다. 한 사흘 푹 쉬다 가리라.
더스트 조각들을 마법 주머니에 한 뭉터기 욱여넣고 나니 종이 울리고 학생들이 뛰쳐나왔다. 눈이 마주친 여학생에게 여유롭게 손을 흔들어 주기도 잠시, 그 수가 늘어나자 느린 걸음으로 뒷문으로 돌아 나왔다. 아무래도 교복이 달라 눈에 띄었다. 모을 만큼은 모았는데 어쩔까. 정문 앞 포장마차 할머니의 떡볶이가 엄청 맛있었는데 그거나 먹고 갈까.
제 몸처럼 들고 다니는 체스말을 손끝에 굴리며 코너를 돌았을 때, 그가 마주한 건 몸을 반 접어 널브러진 인영이었다.
학교 뒷편에 노숙자?
가까이 다가가 보니 노숙자까진 아니었다. 옷차림이 독특한 여자… 아니, 남자였다. 머리가 허리를 넘을 정도로 길게 늘어져 착각할 뻔했다. 구석진 벽에 기댄 채 기절했는지 미동조차 없었다. 키네시스는 고개를 갸웃하곤 그를 깨우기 위해 손을 뻗었다.
“ 응? “
되돌린 손을 보고 재차 고개를 삐뚤였다. 닿은 건 사람의 피부일 텐데, 얼음장처럼 찼다. 병원에 데려가야 하는 상태인가. 남자의 얼굴을 가린 머리카락을 치워 넘겼더니 창백한 안색이 드러났다. 다만 핏기가 없다거나 하는 차원이 아니라, 정말 ‘색이 하얗게 표백된’ 것 같았다. 살아있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키네시스는 남자의 코 밑으로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실날같은 숨도 나오지 않았다…… 홀린 듯 시선을 내리자 가느다란 실선이 보였다. 그어진 것이 아니라 맞물린 것이었다.
허. 키네시스는 헛숨을 토해냈다.
2
“ 그렇다고 사람을 짐짝처럼 짊어지고 와? “
“ 사람 아니었잖아. “
“ 사람처럼 보이잖아! “
“ 그럼 시커먼 남자를 공주님 안기 해서 올까? “
너 그런 취미도 있었니, 하는 눈빛을 읽은 유나가 벌컥 화를 냈다. 기본적인 예의의 문제거든! 손 모자란다고 마중나갔다가 내가 얼마나! 얼마나? 유나는 이어질 말을 기다리며 싱글벙글하는 반반한 면상을 뭉개주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 키네시스와 같은 시간을 공유해온 지도 어연 n년, 이제 와서 고이 간직해온 인성을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주먹을 드는 대신, 유나는 훽 고개 돌려 모니터를 쳐다보느라 여념없는 제이를 향했다.
“ 뭐 좀 나왔니? “
“ … “
“ 제이? “
“ … “
“ 제이! “
너무 집중해 들리지도 않는 모양이다. 화면은 제이가 늘여놓은 데이터가 뒤섞여 어지러웠다. 그 가운데서 필요한 정보만 골라보기 위해선 나름의 눈썰미가 필요했고, 키네시스는 눈치가 저리 가라면 서러울 사람이었다.
“ 단순한 과학기술로 만든 게 아니란 소리네. “
“ 마법을 제외하더라도 이쪽 기술력으로는 십 년은 일러. “
“ 백년이 아니라? “
“ 요새 발전 속도가 얼마나 빠른데. 백년은 너무하고. “
“ 그래서 결론이 뭐니, 너희들? “
제이의 의자가 빙글 돌았다. 물고 있던 사탕의 내용물은 닳아 없어진 지 오래였다.
“ 저쪽에 가져가서 확인해봐. 여긴 부품도 비교대상도 없으니까. “
세 사람의 시선이 거치대에 놓인 남자를 향했다. 이렇게만 보면 정말 잠든 사람 같았다. 장인들의 마을로 찾아가야 하나. 여차하면 헤네시스의 수거함에 두고 올 생각을 하며 키네시스는 태연히 큐브를 굴렸다.
3
불행인지 다행인지 기계인간에 대한 지식은 마법을 제외하곤 아는 게 없을 것 같던 마법사들에게서 나왔다.
“ 주인 없는 안드로이드는 줍는 사람이 임자다냥. “
“ 기록 같은 거 안 되어 있어? “
“ 이젠 소모품 수준으로 대량생산 되니까 일련번호가 있을지도… 목 뒤쪽에 한 번 살펴보라냥. “
“ 바코드야? “
키네시스는 상체만 세운 안드로이드의 머리카락을 들어올렸다. 네로의 말과 다르게 목덜미는 깨끗하기만 했다.
“ 그럴 리가 없는데. 만든 장인의 이름은 무조건 새겨져 있지 않냥. “
“ 그렇게 말한다고 없는 이름이 생기진 않아. 스크래치 하나 없이 깔끔해. “
손을 펴자 새까만 머리카락이 하늘거리며 떨어졌다.
“ 그럼 다른 부위에 새겨져 있을지도 모르겠다냥. 쇄골이나 발바닥처럼. “
“ 꼭 그런 데 새겨야 하는 이유라도 있나? “
“ 내가 알겠냥. “
장인들의 페티시인지 미관상의 이유인지 키네시스로선 아무래도 좋았다. 일련번호가 없다는 건 개인의 취미로 만들어졌거나 떳떳하지 못한 경로로 유통되는 안드로이드라는 뜻이었고, 그말인 즉 키네시스가 애먼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였다. 그럼 여기다 두고 간다고 말하자 네로가 엑 입을 벌렸다.
“ 그냥 네가 가지고 가라냥. 우린 이런 거에 별로 안 익숙하다냥. “
키네시스는 번거롭다는 얼굴로 고개 저었다. 웬만한 모험가들이 하나씩 데리고 다니는 펫도 같은 맥락으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 그였다.
열흘만에 보는 친구들은 여전히 건강해보였고, M시에 벌어졌던 괴현상들도 자연재해의 일환으로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남은 건 그 자신이 힘을 단련해 더 강해지는 것뿐이었다.
그건 역시 혼자가 편하지. 상대가 어지간하지 않고서야, 일행은 오히려 걸리적거리며 심기를 거스를 터였다. 키네시스는 네로에게 손인사하곤 그대로 텔레포트했다.
남겨진 네로는 “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하라는 거냥?!? “ 울분을 터뜨리며 저보다 몸집이 큰 안드로이드를 도서관 한편에 밀어두었다. 안드로이드는 실이 끊긴 인형처럼 고개가 꺾인 채 그림자 속에 녹아들었다.
4
정확히 달이 두 번 차고 기우는 동안, 키네시스는 자신이 주워온 안드로이드를 잊고 있었다. 그간 사냥하는 몬스터의 수준도 높아져 빅토리아 아일랜드를 벗어나 있는 날이 대다수였다. 아기자기한 장난감의 도시에서 치즈를 훔쳐 달아난 태엽쥐를 열심히 때려잡다가 상황 보고 겸 엘리니아로 돌아온 키네시스는 휑한 도서관 내부를 보고 나무 의자에 앉아 잠시 눈을 붙였다.
그가 정신을 차린 건 미몽의 끝자락에서 바로 눈앞을 스쳐 사라지는 붉은 자락과 함께였다. 십수 분이나 지났을까 주위를 둘러보면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 빼곡히 들어찬 책장 위로 부유하는 먼지들. 유리창을 투과해 내리쬐는 볕이 다른 각도로 기울고 있었다. 키네시스는 몸을 일으키며 바닥으로 떨어진 담요를 들어올렸다. 그 짧은 사이 누군가 제게 덮어주었나? 의아함에 고개를 돌린 시야의 사각지대에서, 불현듯, 그림자가 가느다란 빛줄기에 밀려났다. 그 자리에 선 한 사람. 아직 저는 성장기라 되뇌이며 올려다본 얼굴은 낯선 한편 낯이 익었다. 분명.
“ 저번에 그… “
고스란히 빛줄기를 받은 자색 눈동자와 마주쳤다. 눈이 부시지도 않은지 깜빡임 하나 없었다. 빛을 흡수하긴 커녕 반들거리며 반사하는 모습에서 키네시스는 그가 인간이 아닌 존재임을 새삼 느꼈다. 그러면서 영롱한 보석에 시선을 빼앗긴 것처럼 눈을 거두지 못하는 건 어째서인지. 체감상 한참을, 그러나 아마 실제로는 수십 초도 지나지 않았을 시간이 지나고 누군가가 삐걱이는 나무 문을 열고 들어왔다.
“ 오. 자넨 키네시스 아닌가. 오랜만이구먼. “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대마법사가 반갑게 인사했다. 키네시스는 그제야 멈췄던 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무래도 물을 것이 생겨버렸다.
5
인공 피부 아래 느껴지는 술식은 꽤나 공을 들인 것이어서, 하인즈는 이것을 해제해야 하는가 망설였다고 한다. 한 일주일 정도.
“ 일주일 씩이나? “
“ 마도의 길이란 한 번 정진하면 시간마저 잊어버리기 마련이라네. “
계면쩍은 구석 없이 대마법사는 허허 웃었다. 계급이나 지위에 얽매이지 않고 편히 말을 놓는 키네시스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노인 공경을 모르진 않았다. 반박하는 대신 심드렁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래서 결론이 뭐냐 하니, 불길한 근원이 닿은 술식만 해독하고 파훼시켰다. 남은 부분은 안드로이드의 기본 원칙들에 위반되지 않는 선에서 집중된 보조 마법이니 괜찮을 것이다. 더 뜯어보지 못한 이유는 안드로이드의 완성도로 미루어 보아 사적 재산의 경계를 침범하면 골치 아플 것 같아서이다. 괜찮다면 권리를 양도 받아 미래를 위한 지식을 더 발굴해보겠다.
그걸 왜 내게 묻느냐는 물음에 하인즈가 답하기를, “ 그야 그대를 주인으로 인식한 상태이니 말일세. “
“ 대체 언제? “
“ 그걸 내가 알겠나. 방범 마법이 수준급이었네. “
대충 알겠다. 제아무리 대마법사라도 세간의 규칙에는 민감해야 한다는 뜻이리라. 하지만 키네시스로선 짐작가는 것이 없었다. 설마 전원 끊겨 버려진 걸 처음 만졌다고 그러진…… ……맞나? 정말 그땐 아무 반응도 없었잖아. 그럼 양도할 텐가? 그건 아니고.
대마법사는 아쉬운 듯 혀를 찼다. 아무래도 빈소리는 아니던 모양이다. 공짜지만 제 손에 쥐여진 것을 가져가겠다길래 허풍 삼아 고개를 저었더니 소유권을 주장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키네시스는 저편에 반듯하게 선 안드로이드를 힐끔 보았다.
“ 아, 그리고 일련번호는 손바닥에 새겨져 있더군. 이 땅에선 잘 쓰이지 않는 문자인데… “
어쩐지, 여기서 손바닥을 뒤집어 확인하면 돌이킬 수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키네시스는 그런가보다 흘러넘기고 하인즈에게 인사했다. 그러자 예의 바른 후배를 두어서 기쁘다며 술식 해체 비용을 디스카운트 받았다.
“ …농담이죠? “
“ 허허. “
연로한 마법사는 그저 웃기만 했다.
6
그로부터 또다시 일주일. 키네시스가 이세계의 기술력을 실감하기엔 충분한 기간이었다.
‘ 생각보다 훨씬 반응이 빠르단 말이지. ‘
멈춰서 돌아보자 덩그라니 대여섯 걸음 뒤로 떨어져 서있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분명 눈에 닿는 길이가 아닌데도 그림자가 드리워 눈을 가리는 그런 설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인지, 단순히 시야를 착각하는 반복이었는지 몰랐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지만 사소한 의문에 가정을 세우며 이어가보는 것은 그런 사유가 오래 몸에 익은 탓이다. 피곤함이 없잖아 있지만 그만큼 도움이 되는 습관이라 오늘도 술술. 막힘없이 흘러내렸다.
‘ 걸렸다는 마법은 둘, 셋… 넷? 안드로이드의 기본 원칙은 우리 쪽 3원칙과 비슷하다니까 마법보단 내재된 기능이라 치고. 이동 속도 빠르네. 자동? ‘
소유주와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지면 근접한 곳으로 이동한다. 그건 개인이 소유한 모든 안드로이드의 공통점이라고 네로가 호언장담했었다. 시험 삼아 땅바닥에서 지붕 꼭대기로 텔레포트하자 곧바로 뒤편에 옷깃 스치는 소리가 났다. 어지간한 마법사보다 빠른 듯했다. 게다가 웬만한 몬스터에게 인식되지 않는 마법과 훼손 방지 마법까지 걸려 있어 이쯤 되면 사람 팔자보다 더 좋다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들이 비전투용 안드로이드를 뒤에 붙이고 다닐 메리트는 아니다. 키네시스는 거꾸로 불어오는 바람에 반쯤 뒤집힌 검은 머리 타래를 보았다. ‘ 웃을 타이밍인데. ‘ 웃어봐야 나눌 사람도 없어 피식 소리 흘리고 말았다. 가늘고 긴 리본이 덩달아 펄럭였다. 남자 안드로이드에게 붉은 천을 장신구로 달아주는 건 무슨 취미일까, 답이 궁금하지 않은 의문이 한순간 고개 내밀었다가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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