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 dragnoca 1
*용기사AU. 인겜 평행세계라고 생각하면 편합니다 썰에 가깝습니다 은→프 전제로 언제나의 취향껏 섞일 예정...
*해석상 그리고 편의상 용=드래곤 동격
*벌리고 보자 ᕕ( ಠ‿ಠ)ᕗ
[결국 올해도 무리였어]
인연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므로 가치가 있다고 교수가 말했다. 강당의 그 누구도 반문하지 않았다. 종족의 불확실성을 단정짓는 그 말의 무엇이 그토록 많은 이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는지 몰랐으나 알 속의 아이는 불쑥 솟은 의문을 저를 가두고 있는 표면을 툭툭 두드리는 것으로 달랬다. 제가 낸 소리가 끝나면 밖에서 톡톡, 보다 작고 조심스러운 울림이 돌아왔다. 좋아. 내게서 주의를 돌리지 말라구. 아직 스스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을 몸 가득 띄우고, 아이는 저를 품은 어둡고 끈적한 공간을 휘저으며 찌뿌둥한 몸을 돌렸다. 방위를 알지 못하니 제가 머리를 틀어 꾹 누른 표면이 알의 위인지 아래인지 알 길이 없었다. 아무렴 어때. 아이는 다시 한 번 몸을 돌렸다가 이내 중심부로 웅크렸다. 이곳은 너무 지루하고, 어둡고, 답답했다. 밖에서는 여전히 지루한 교수의 말과 사각거리는 필기 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몸 어느 구석을 뻗어 표면을 꾸덕 긁어댔다. 어서 이걸 부수고 나가고 싶어서 그런가 긁는 소리가 여느 때보다 컸다. 정말 나가면 안 돼? 잠시 후 난처함을 담은 손길이 표면을 쓸었다. 동시에 아이의 머리에 드래곤의 중후한 목소리가 직접 속삭였다. 마치 곤란한 심술을 달래는 듯한 두 인간과 드래곤의 다독임이 아이의 충동을 누그러뜨렸다. 알아. 아직 나가면 안 되는 거. 시무룩한 아이의 사념을 들었을 드래곤은 말이 없었다. 주변 인간들의 사정에 시기가 휘둘리니 그녀도 그저 달래는 것 이외엔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다행히 아이는 여느 때처럼 칭얼이는 대신 침묵을 택한 모양이다. 부스럭거리던 알이 잠잠해지자, 열심히 필기하던 것을 멈추고 구체를 품에 끌어안고 있던 프리드가 작게 한숨을 토했다. 안쪽의 새끼가 태어나야 할 적정 시기를 지났는데도 계속 날을 미루어야 하니 책임자로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프리드.]
알아, 아프리엔. 레프족 대표를 만나봐야겠어. 언제까지 이 상태로 있을 수는 없겠지…
건물 밖에서 제 맹약자를 기다리던 아프리엔이 커다란 날개를 허공에 펼쳤다. 간만에 얻은 휴가 동안 밀린 학점을 채우겠다는 프리드의 소소한 다짐은 이룰 가능성이 없는 듯했다.
[더불어, 대마법사]
현존하는 드래곤 라이더, 이른바 용기사라 불리는 자들 중에서 가장 널리 이름자가 알려진 이로 대마법사 프리드를 빼놓을 수 없지요. 그가 가장 고귀한 품종인 오닉스 드래곤의 왕 아프리엔의 맹약자라는 사실은 다들 아실 겁니다… 종종 그의 이명인 대마법사에 의문을 갖는 어린 치들이 있는데, 그는 열이라는 어린 나이에 오시리스 대륙 굴지의 마탑으로부터 확고한 인증을 받으며 최연소 룬 문자 마스터로 등극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매년 갱신하고 있는 마력과 보호마법 이론은 가장 손쉬운 마력 운용 이론으로써 교단에서도 꾸준히 인용되고 있는 바……
아, 쪽팔려.
뭘 새삼스레 그래. 매번 듣는 소리면서.
이런 거엔 면역 안 생기니까…
피곤하게 산다, 너도.
동기가 혀를 찼다. 프리드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바다 건너 루디브리엄에서 사절단이 온 것까지는 좋았다. 동선이 얽히지만 않는다면 국익이 되는 일이니 환영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리프레의 외교관들은─ 대륙 남부에 위치한 마탑이 인접한 리프레와 특히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마탑이 유일하게 인재를 외부로 돌리는 기관을 좌시하지 않았다. 말이야 견문을 넓히는 공개현장이었으나, 이런저런 호기심과 떠보기에 일일이 답해주어야 하는 연구원들 입장에서는 방해에 불과했다. 그나마 당장 개조술식 발동 현장이라 외부 접근이 차단되어 있으니 망정이지 공식적으로는 기관 소속 연구원인 프리드가 그 의사와는 무관하게 사절단의 구경거리가 될 뻔했다. 아무리 그래도 확성마법이 걸린 목소리로 저렇게 구구절절 제 지난날을 읊고, 면역이 생길래야 생길 수가 없다. 대마법사라는 칭호도 스물을 갓 넘긴 청년에게는 부담스러웠다.
…자, 잡담은 거기까지. 마력이 흐트러지니 집중합시다.
교수가 주의를 환기시켰다. 면구스러워하는 유명한 동기를 보고 키득거리던 연구원들이 벌점이 쌓일까 서둘러 고개를 되돌렸다. 프리드는 교수에게 감사를 담아 고갯짓하고는 손끝으로 흘러나오는 마력을 내려보았다. 구경꾼이 있든 없든 진행은 순조로웠다.
[그의 사정]
프리드는 오닉스 드래곤 아프리엔과 맹약을 맺었지만 그와는 별도로 타고나길 드래곤에게 친숙한 마력을 가졌다. 이제 겨우 개체수가 평준화에 이른 드래곤은 비좁은 알에 갇혀 있을 적에는 특히나 조심스레 다뤄져야 했는데, 어린 드래곤 특유의 마력에 거스르지 않고 보살필 인력은 귀했다. 이미 맹약자가 있다는 사실은 가산점마냥 윗선의 이해관계를 충족시켰다. 프리드는 아프리엔의 묵인 아래 떠넘겨받은 크고 작은 드래곤의 알들을 보살펴왔다. 그에게는 이외에도 해야 하는 일이 많았으므로, 대게는 알의 자유분방한 마력에 맞추어 인간의 존재를 적응시키고 새끼가 태어날 즈음 각국이 앞다투어 보내는 맹약 후보자들을 선별해 접촉시키는 식이었다. 상냥하고 강한 파동을 지닌 프리드를 시작으로 인간의 세계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알 속의 생명은 제 나름의 기준으로 무난히 맹약자를 선택하여 기관을 떠나갔다. 이따금 각국 사절단의 어떤 인사도 택하지 않아 소란이 일긴 했지만 결국에는 권력의 테두리 밖에 존재하는 자신의 인연을 찾아냈고, 프리드는 그들을 축복했다. 소중한 이를 찾아 함께하게 된 기쁨은 찬사 받아 마땅했다.
그렇기 때문에, 맡은 지 벌써 1년이 넘어가는 하울링 품종의 새하얀 알은 프리드의 애물단지였다.
말이 심하잖아.
귀여운 골칫덩어리라고 해줘? 그게 그거지.
메르세데스가 코웃음쳤다.
현재까지 밝혀진 드래곤의 품종은 13가지. 각각의 특성에 따라 네 분류로 나뉘고 그 가운데 세분화가 이루어졌다. 인간보다 월등한 힘을 가진 드래곤의 존재에 매료되어 밤낮 가리지 않고 연구에 매진하는 학자들도 있었지만 아직까지 미지에 쌓인 것이 한가득이었다. 그 가운데 하울링 드래곤은 서식지를 가리지 않아 전 대륙에 가장 개체수가 많았다. 그러나 프리드가 맡아왔던 알들은 외교적으로 주목받는 희귀종이 대부분이었기에 오히려 그 흔하다는 하울링 품종이 어색했다. 프리드는 하울링 종 특유의 문양이 새겨진 알을 쓰다듬었다.
그래도, 인내심이 많은 착한 아이야.
약 반 년 전부터 알 속의 아이는 세상으로 나오고 싶어 했다. 하지만 주변에 맹약자로 마땅한 후보자가 없어─어른의 사정은 구구절절하니 생략하도록 하자─ 프리드는 그를 만류해왔다. 아이가 곤란해하는 프리드의 기색을 읽고 제 욕구를 억누른 덕에 문제될 일이 없었다. 아직까지는.
인간의 손에 닿은 드래곤은 맹약자를 필요로 한다. 아프리엔의 말에 의하면 순수한 자연의 기운이 인간이 가진 아우라와 닿는 순간 변질되기 때문에, 맹약을 맺지 않으면 평생을 공허에 시달릴 것이라고 했다. 반대로 인간은 맹약이 필수가 아니어서, 세간에서는 마치 간택처럼 묘사되어도 여러 사정에 따라 거부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 프리드가 맡고 있는 아이가 그랬다. 어느 정도 명망 있는 지위의 사람들은 보다 귀하고 강한 드래곤을 원했다. 그 대마법사가 보살피는 드래곤의 알이라는 소리에 혹해서 귀를 열었다가도 내용물이 작고 순한 하울링, 개중에서도 가장 약하다는 윈드 품종인 것을 들으면 언제 관심을 보였냐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다고 그간 정이 든 아이를 아무에게나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라, 하루하루 미룬 것이 벌써 해가 바뀌었다.
겨울의 나라는 어때? 멀긴 해도 거기라면 어떤 드래곤이든 쌍수 들고 환영할 텐데.
거긴 안 돼.
메르세데스가 의아함을 띄웠다. 프리드는 눈처럼 새하얀 알을 내려보았다. 은은한 형광으로 새겨진 바람의 룬이 아스라이 깜빡였다.
이미 한 번 버렸으니까.
그렇게 말하고는 입을 닫았다. 메르세데스는 더이상 묻지 않았다.
[또 하나,]
아이는 줄곧 말해왔다. 난 너의 용이 되고 싶어. 프리드는 회유했다. 내겐 이미 맹약을 맺은 드래곤이 있어. 아이가 물었다. 나와도 맹약을 맺으면 되잖아? 프리드가 말했다. 맹약의 대상은 하나뿐이야. 둘이 될 수 없어. 아이는 이해하지 못했다. 어째서? 나는 네가 좋아. 너는 싫어? 프리드가 아이를 달랬다. 그럴 리가 있니. 하지만 맹약이란 그런 거야. 맹약자를 선택하는 건 그런 좋아함과는 달라. 세상은 넓으니 네가 바라는 맹약자가 나타나겠지. 아이는 물음을 되풀이했다. 프리드가 돌려줄 답 또한 한결같았다.
잠깐, 아직 가까이 가면…!
프리드가 황급히 만류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소녀가 은은한 표면에 손을 뻗은 순간, 알은 폭발했다. 새하얀 껍질이 산산조각나 온 사방으로 튀었다. 파스스 연기가 올라오는 소리가 났다. 소녀, 랑은 질끈 감았던 눈을 살금 뜨고 깜짝 놀랐다. 제 앞에 뜬 반투명한 푸른 막에 알의 파편이 박혀 있었다. 그녀의 뒤에서 프리드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아프리엔이 제 맹약자가 있는 곳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창을 열어놓은 것은 만일을 대비한 선견지명이었다. [프리드.] 난 괜찮아, 아프리엔. 프리드는 얇은 조각이 뺨을 스치고 지나간 붉은 실선을 손등으로 한 번 훑었다. 아, 오랜 여신께 감사히도 피는 나지 않았다.
[다쳤어?]
앳된 목소리는 폭발의 중심지인 방 한가운데서 튀어올랐다. 프리드는 앞선 랑이 귀엽다고 중얼거리는 것을 듣고 한숨을 삼켰다. 어린 드래곤이 그녀와 대면하고 각인한 것이라면 아무렴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프리드는 작은 소녀의 몸체보다 두드러지지 않기 위해 몸을 낮췄다. 알이 깨진 이상 가장 가까이 선 자의 권리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 머뭇거리는 랑의 등을 떠밀어주어야 하나 고민하는 와중에 재차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다쳤냐니까?]
어, 아니. 마법사님 덕분에 안 다쳤어…!
떨리는 목을 가다듬고 해맑게 웃으며 답하는 소녀의 머리 위로, 가느다란 바람이 불었다. 어린 드래곤이 고개 저었다.
[다른 인간에게 물은 게 아니야. 네 뒤에 있는 인간에게 물었어.]
이런. 그 말을 듣는 순간, 프리드는 사안이 골치 아파질 것을 예감했다.
[두 마리의 용]
오늘도 눈을 뜨지 못했다. 어린 용은 볼을 부풀렸다. 프리드와 맹약을 맺고 싶은 마음은 한결같은데 그를 에워싼 이들 모두가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왜? 난 프리드가 좋고 그도 나를 좋아하면 그걸로 된 거잖아. 말하면 머뭇거리는 시선이 돌아왔다. 혀를 차는 소리가 순진한 어린 용에 대한 안타까움과 한심함인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프리드와 먼저 맹약을 맺은 상대는 오닉스 드래곤 아프리엔이다. [그 이름 프리드가 지어준 거지?] [그렇단다.] 아프리엔은 상냥하다. 제 맹약자에게 떼를 쓰는 처치곤란한 어린 용에게 많은 것을 알려준다. 하지만 맹약에 대해서만큼은 완고하다. [그는 두 맹약을 감당할 수 없어.] 고집이 쎈 어린 용도 제가 좋아하는 사람을 들먹이면 어쩔 수 없이 기세를 누그러뜨리고 만다.
어린 인간을 싫어하지 않는다. 프리드와 그의 맹약자, 그리고 다른 인간들이 고개 저을 때 소녀는 제일 먼저 어린 용의 고집에 수긍했다. 그러면서도 매일같이 어린 용을 찾았다. 미련이냐 물으면 친해지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이 있었다. 아무 이유 없이 호의를 적의로 되받아칠 이유가 없어 어린 용은 소녀의 방문을 기꺼워했다. 랑은 매번 싱그러운 초목의 냄새를 묻히고 왔다. 그녀가 지나온 길을 알아맞추는 건 어린 용의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이따금 랑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럴 때면 프리드가 명쾌한 답을 내려주었다. 그는 항시 어린 용의 곁을 지키면서도 다양한 지명과 그 땅에서 나는 많은 것들을 알고 있었다. [대륙을 전부 돌아봤어?] 프리드는 별일 아니라는 듯 긍정했지만, 우와, 호들갑 떠는 랑의 반응으로 보건대 겸손에 불과했다.
밤이면 이야기를 들었다. 구전으로만 전해지는 전설이 조곤한 목소리로 흘러들었다. 어지간한 인간보다 뚜렷한 이지를 가졌기에 취사선택할 수 있는 특권을, 어린 용은 나른한 눈꺼풀과 함께 내려놓았다. 프리드가 해주는 이야기는 뭐든 좋았다. 그는 말재간을 타고난 데다 상대의 기색을 살필 줄 알았다. 제 감정을 숨길 생각 없는 어린 용이 상대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작은 등불 하나만 일렁이는 평야, 프리드는 집채만한 아프리엔의 고개에 기대어 앉았다. 어린 용은 그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 긴장을 풀었다. 자정이 지나면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올라왔고, 그제서야 프리드는 쌓아둔 채 방치하던 양피지 더미를 읽을 수 있었다. 밤보다 새까만 눈동자가 슬핏 그를 비추며 이따금 말상대가 되어주었다. 잔잔하기 그지없어 어린 용을 깨우지 못했다.
하루는 어린 용이 아프리엔에게 물었다. 아무리 책을 읽어도,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주워들어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맹약을 맺을 때 어떤 기분인지 궁금해요.] 세월에 구애받는 경향이 인간의 절반도 되지 않는 독립적인 여느 드래곤과 달리, 어린 용은 유독 아프리엔에게 공손했다. 자아가 형성된 이후 쭉 타인을 대하는 데 있어 흠 잡을 구석 없는 프리드와 함께 해서인지도 몰랐다. 호의에 이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어린 용을 대하는 아프리엔의 태도 역시 보통보다 유했다. 그녀는 원숙한 스승과 같았다. [세상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있지. 겪어야만 비로소 알게 된단다. 그 어떤 언어도 당시의 감정을 표현하는 건 불가능하니.] [그래도, 일부만은 담아낼 수 있잖아요. 언어는 원래 그런 용도인데.] 작정한 듯한 어린 용을 본 아프리엔이 잠시 침묵하고 입을 열었다.
[전신을 휘젓는 감각이었지. 전류가 관통하고, 천지가 요동치듯.
그리고 무엇보다 편안한 물결에 휩싸였단다.]
묵직하고 느릿한 말이었다. [그렇구나.] 어린 용은 수긍한 것처럼 짧은 한 마디를 끝으로 말이 없었다. 아프리엔의 표현을 풀고 풀어 음미하는 것이었다. 꼬박 일주일을 머리를 쥐어짰지만, 그럼에도, 어린 용은 끝까지 궁금해했다. 미지는 오래 상상할수록 애타게 멀어져만 갔다.
호와 불호의 극으로 나누어 보자면 어린 용은 아프리엔을 좋아했다. 그녀 이외의 동족은 모두 어린 용에게 무관심했다. 악의보다는 덜 낯설긴 해도, 모름지기 공명정대한 웃어른에게는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 되기 마련이다. 지혜롭고 모두가 의지하는 아프리엔은 어린 용이 따르는 유일한 어른이었다. 다만, 그렇다고 무작정 그녀를 좋아만 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감정은 상쇄되지 않고 쌓이는 것이었다. 아프리엔에게 가진 호의와는 별개로, 어린 용은 그녀가 불편했다. 엄격한 어머니 같아서가 아니다. 어리다고도 할 수 있는 마음은 질투에서 기인했다. 제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시기. 프리드는 아프리엔의 맹약자다. 아프리엔은 프리드의 맹약자다. 둘 사이에는 그 누구도 끼어들지 못하는 강한 유대감이 있고, 그건 아무리 어린 용이 노력한다고 개입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어린 용은 자신이 아직 어리다는 것과, 동시에 무궁한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사실을 분명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크게 자라도, 강해지고 똑똑해져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까… 랑은 그것을 ‘출구 없는 미로를 헤매는 것 같다’라고 했다. [벽을 부수거나, 하늘을 날아서 출구를 찾으면 되잖아.] 어린 용이 말하자, 랑이 의아함을 띄웠다. 미로를 통해 나가야지만 출구가 의미 있는 거 아니야? …어쩌면 그랬다. 출구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애착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제아무리 뛰어난 드래곤이라도 감정 하나를 억제하지 못하는 것과 맞닿아 있다. 아직은 괜찮아. 어린 용은 간절했다. 그 간절함이 아직 프리드와 아프리엔, 근근히 찾는 인간과 함께 하는 지금의 평화보다 월등하지 않았다. 어린 용은 그렇게 결론 지었다.
아프리엔에 대한 어린 용의 감정은 복잡하다. 그러나 아이는 개중 가장 강렬한 것만을 담아냈다. 어린 용은 스스로가 잘 갈무리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노련한 드래곤의 눈에는 훤히 보였다. 오닉스의 왕은 아무 대응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괴로워도 세상을 덮는 밤의 장막처럼, 치기 어린 시선이 제 흐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몸소 내보였다. 모든 무고한 자 앞에서 자애로운 왕의 낯 아래 감추어진 속내를 읽는 건 맹약자뿐이다. 너도 질투를 해? 뜻밖이라는 투로 프리드가 웃었다. [그것마저 초월한다면 진즉 승천하였겠지.] 아프리엔은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 속에 강한 인내가 담겨 있음을 프리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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