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죠죠] 로령/ 작은 인어 이야기
죠죠의 기묘한 모험
로한x레이미 (로령)
Written by VC
1
그녀는 작은 알에서 태어났다.
진주같이 동그랗고 투명한 구체를 주운 건, 그녀가 태어나기 1년 전. 해안가의 모래에 파묻혀있다 드러난 일부분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새로운 무언가에 대한 호기심과 예쁜 장신구에 대한 흥미. 모래 속에서 그것을 집어든 이유는 단지 그것 뿐이었다.
얄팍한 호기심과 흥미는 고작 반나절 만에 식어버렸다. 집으로 돌아와 테이블 위에 주머니에 든 것을 꺼내놓을 때 다시 한 번 눈에 담았지만 더이상 신기하지도 않았다. 겉옷을 옷걸이에 걸고 방문을 나서는 순간 이미 그것의 존재는 머릿속에 없었다.
그로부터 1년. 테이블 위의 너저분한 종이와 필기도구가 담긴 플라스틱 통을 정리하다가 데구르르 튀어나온 구체를 인식하는 데에 몇 초 가량 걸렸다. 그러고 보면 이런 게 있었구나. 두 손가락으로 그것을 눈높이로 들어올려, 눈썹에 닿을 정도로 가까이 가져다댔다. 어렴풋이 남아있는 기억 속에는 물이 담긴 구슬처럼 투명했는데 1년 간 먼지라도 생겼는지 건너 편이 작은 반점에 가렸다. 아니, 정확히는 내부에 작은 반점같은 무언가가 들어있었다.
그것은 태어처럼 몸을 구부리고 있는 아주 작은 생명체였다. 그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구체 자체가 크게 요동쳤고, 갑작스런 진동에 놀라 구체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파삭, 하는 '천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구체는 깨졌다. 소리와 다르게 유리처럼 '산산조각'이 나, 그 조각들은 마룻바닥에 파스스 '스며들었다'.
눈을 크게 뜨고 내려다보자 그것이 파르르 떨더니 눈을 떴다. 그것은 물 속에 있던 것처럼 젖어있었는데, 눈을 뜨고 나를 멀뚱히 올려다보는 사이에 점점 마르는가 싶더니 그와 동시에 크기가 조금씩 커져갔다.
고인 시간에 돌을 던진 것은 작은 기침소리였다.
에취.
그제야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잠시 망설이다가 그것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것은 여전히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고 적대감은 보이지 않았다.
2
대체 넌 물고기야, 인간이야? 적당히 반반 합쳐서 인어인가?
그건 나도 몰라.
그럼 아는 게 뭔데?
글쎄... 뭘까나.
자신의 손가락이 신기한듯 머리 위로 올려 바라보는 그것은, 적어도 외적인 측면에서 인간과 다를 것이 없었다. 손가락 사이로 얇은 막이 붙어있다거나, 쇄골의 윗부분에 칼로 잘라놓은 것같은 단면이 숨을 쉴 때마다 펄럭이는 것, 결정적으로 내 한 손바닥 위에 가볍게 올라올 정도의 크기라는 사실만을 제외하면 분명 그랬다.
뭐... 일단 숙박은 허용하지. 소잿거리로 써먹으려면 관찰도 필요하니.
그것은 고맙다는 인사 대신 방긋 웃었다. 자신을 생명체보다는 개체로 취급하는 말투에도 개의치 않는 모습에 어쩐지 겸연쩍어진 나는 선을 덧칠하며 스케치북을 얼굴 높이로 들어올렸다.
3
이름. 나는 레이미야. 그리고 너는 로한.
그것은 푸른 혈관이 비치는 손목을 길게 뻗어 나를 가리켰다. 손가락질 당하는 건 그리 기분이 좋지 않다. 무심코 미간을 찌푸리자, 아, 미안, 다시 싱긋 웃으며 손을 내렸다.
이름을 주입하는 것처럼 반복하는 걸 보니 내가 내심 자신을 '그것'으로 지칭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듯했다. 눈치가 빠르군. 들고있던 노트에 슥슥 메모를 하며 나는 레이미, 하고 불러보았다. 응? 그리고 이내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와 마주하고, 당혹스러움과 이유를 알 수 없는 껄끄러움에도 불구하고 레이미, 레이미 하고 연신 그 이름을 혀끝에서 굴려야했다. 인간이 아니지만 확실히 끈질긴 모습은 여성의 그것이다, 메모에 추가로 적으면서.
4
로한.
로한.
레이미는 시도 때도 없이 내 이름을 불러댔다. 그녀의 목소리는 상당히 미성이었지만 한창 작업 중인 내겐 듣기 좋고 나쁘고의 이전에 방해였다. 처음엔 일일이 대꾸해주다가 이내 신경질을 내며 훽 돌아앉아 무시하자 비로소 그녀는 조용해졌다. 한참을 작업을 하다가 생각해둔 부분까지 모두 그리고 나서야 구부렸던 몸을 피며 고개를 돌렸다. 작업 후 똑같은 곳을 확인하게 된 것은 레이미가 이 집에 자리잡고 난 후부터 생긴 습관이었다.
이봐, 자냐?
대답이 없는 걸 보니 그대로 곯아떨어진 것 같다. 그렇게나 불러대며 신경을 거스르더니. 허리를 숙여 몇 겹의 손수건 위에 작은 몸을 파묻은 레이미에게 고개를 가까이 가져다댔다. 가슴 위켠의 아가미가 일정한 간격으로 살짝 들렸다 내려오고 있었다. 가만히 눈을 감은 레이미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아서, 작게 이어지는 호흡을 제외하면 인형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집중할 땐 몰랐는데 집 안에 맴도는 정적이 익숙하지 않았다. 손바닥만하고 시끄러운 생명체라도 내심 동거인으로 받아들이고 있던 건지.
문득, 곱게 감긴 눈두덩을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펜을 쥐고 진지하게 고민에 빠졌다. 충동에 넘어갈 것이냐, 굳건한 체면을 지킬 것이냐. 체감은 몇 배나 길었지만 짧은 시간 고민을 마치고 하얗게 빛나는 얼굴로 손을 뻗었다. 인형같이 차갑고 딱딱하리라 짐작한 피부는 부드럽고 서늘했다. 하지만 역시 인간의 그것과는 다른 위화감이 있었다. 매끈한 물고기의 비늘처럼… 눈두덩에서 서늘한 뺨까지 가볍게 손가락을 내리고 거두어들였다. 제 몸의 온도에 비해 높은 무언가가 닿았으니 깰 만도 했으나 레이미는 여전히 색색거리며 고르게 숨을 쉬고 있었다.
신기한 생물이다, 이것은. 만화의 소재가 될 만한 모든 것에 열렬한 관심을 보이고 필요하다면 불법이라 불리는 일까지 서슴지 않는 자신이지만, 어느 누군가와 일정 시간 이상을 함께 보낸 적은 없다. 굳이 의도한 건 아니지만 혼자가 편했고 남들도 독특하다면 독특할 내 성격을 한 번 겪고 나면 친군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나의 공간에 다른 누군가를 들이고 곁에 둔다는 게 익숙하지 않았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와 새처럼 빠끔거리는 입술이 두 귀와 두 눈에 틀어박히는 건 과연 좋은 징조일까, 나쁜 징조일까. 막상 사위가 조용해지자 언제나처럼 잠긴 침묵이 달가우면서도 어쩐지 어색했다. 이렇듯 달라지는 건 과연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펜을 내려놓고 위를 정리한 책상에 오른쪽 볼을 대고 엎드렸다. 팔 하나 또는 두 걸음 떨어진 위치에 밝은 색의 손수건이 겹겹이 쌓여있다. 가만히 귀를 귀울이면 살아있음을 표방할 뿐인 레이미를 두 눈에 몇 번 깜빡이다가 가라앉았다.
5
손바닥만큼 작던 그녀가 갑자기 크기를 불리기 시작한 건 어제 저녁의 일이었다. 그녀가 알에서 나온 지 2주가 되는 때였다.
누군가와 한 공간을 공유한다는 건 달갑지 않았지만 인간이나 인간의 그 어느 반려동물보다 작은 크기 때문일까, 레이미의 존재는 생각외로 거슬리지 않았다. 내키기만 하면 내 이름을 불러댔지만, 작업에 집중할 때 말을 걸지 말라고 몇 번이나 주의를 준 끝에 난 의자에 앉아 펜을 휘갈기는 동안에는 방해받지 않을 수 있었다. 네 시간을 내리 만화를 그리고 완성한 원고의 마지막 펜칠이 마르기를 기다리며 문득 레이미를 보았다. 저를 위해 마련해준 작은 '침대' 위에 가만히 앉아, 그녀는 무언가를 우물거리고 있었다.
식사…?
그러고 보면 레이미는 따로 무언가를 먹지 않았다. 그녀는 식사 시간이 되면 방해하지 말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내 주의를 환기시키며 식사를 하게 했다. 작업에 들어가면 길게는 몇 끼를 그냥 건너뛰기 일쑤였던 일상이 세 끼를 꼬박 챙겨먹는 규칙적인 것으로 바뀌자, 엊그제 원고를 가지러 온 담당자가 웬일로 얼굴이 폈냐며 놀라워 했다. 그리 놀랄 일인가 싶었지만, 화장실 거울로 들여다본 얼굴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이전과는 달리 빛깔이 번들해서 자존심이 상했다. 혼자서도 잘 살아가고 있다고 자부하는 아성에 타격을 입은 탓이다. 반면 그런 나와 달리, 레이미는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았다. 이따금 내가 작게 뜯은 빵이나 치즈 덩어리를 앞에 놓아두었지만 그것들은 고스란히 내 접시로 돌아왔다. 심지어는 물도 마시지 않았다. 알에서 태어난 데다 인어가 아닐까 싶은 외양이니만큼 그녀의 침대 옆에 너비가 그 두 배는 되는 접시에 물을 가득 담아 두었는데도, 그녀는 침대에 앉아 팔꿈치 위까지 물에 담글 뿐이었다. 갑자기 물 속으로 뱀처럼 기어들어가 둥실 떠있기도 했지만 그것을 식사와 연관지어 보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무언가를 입에 넣고 씹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이색적이었다. 씹는 것에 집중하는지 눈을 거의 감듯 내리깔고 턱을 움직인다. 손에는 무언가를 꼭 쥐고 있었는데, 그녀를 바로 아래로 내려다보는 위치임에도 양손으로 감싸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잘 보이지 않았다. 왜 내게 말하지 않았지. 그리고 먹을 걸 거부하길래 광합성으로 살아가는 종인가 보다 납득하고 있었건만. 아예 오른 손에 턱을 괸 채로 그녀를 지켜보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녀는 줄곧 씹던 것을 꿀꺽 삼키고 감싸쥔 손에 얼굴을 가져다대 다시 베어물었다. 반짝, 약한 빛이 동공을 찔렀다.
어?
고개를 들고나서야 자신을 향한 시선을 알아차린 레이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제 끝났어? 오늘은 일찍 끝났네.
아아. 뭔가를 먹을 수 있는 줄 몰랐는데.
어? 방긋 웃었다가 다시 눈을 크게 뜬 그녀가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말없이 내게 손을 펴보였다. 꽁꽁 뭉쳐있던 하얗고 모난 조각들이 스르륵 무너졌다. 그것은 알의 껍질이었다.
6
로한.
로한.
쨍그랑, 바닥에 떨어진 액자 유리가 깨졌다. 그 바람에 안에 들어있던 빛바랜 사진이 삐져나왔다. 유리 파편이 발등으로 우수수 떨어졌지만 피하지 않았다. 그럴 겨를이 없었다.
레이미는 내게 손을 뻗었다. 반가운 손을 맞이하는 것처럼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내게 손짓했다. 나는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리듯 그녀에게 다가갔다. 날카로운 통증이 발바닥을 갈랐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그녀의 몸이 투명하게 변하고 있었다.
내 아가미에 네 숨을 불어넣어. 내겐 네 숨이 필요해, 로한.
급박한 상황에서 침착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조곤조곤 내뱉는 그녀의 말이 귀를 찔렀다.
나는 가슴으로부터 눈구덩까지 벅차오르는 무언가를 애써 삼키며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러자 힘 없는 손이 기척없이 올라와 볼에 닿았다. 내 볼을 천천히 감싸쥐며 레이미는 다시 말했다. 내 아가미에, 네 숨을.
나는 여린 목에 이를 박았다. 차갑고 미끄러운 감촉이 그 끝에서 파르르 떨리는 것을 조용히 받아들이며, 레이미의 상체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품에 한가득 안겼는데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을 그녀를 안는 것으로 채우려는 것처럼. 마침내 억누르고 있던 뜨거운 것이 터져나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깊게 숨을 들이쉬고 깊게 숨을 내쉬는 호흡이 목에 와닿자, 커져버린 인간도 물고기도 아닌 그것은 비로소 미소지었다.
그리고 그녀는 뜨거운 숨결에 녹아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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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쓴 게 없어서 백업겸 옮겨옴(찔린다..
'오늘의 연성은 이런 느낌으로 어때' 내 아가미에 네 숨을 불어넣어, 기분나쁜 느낌으로 연성! 이었다. 주제가.
딴소리지만 메이플 프리드의 일지 다시 나온다는데 우려먹지 말고 새 스토리를 달라고 넥슨/짤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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