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중기억
*코라손과 물의 기억. 센고쿠&가프와 돈패밀리 참조출연.
커플링 요소는 딱히 없지만 돈형제 위주, 굳이 따지자면 코라손의 혈육을 향한 복잡미묘한 감정선이 요오오만큼.
*썰체와 문어체 뒤죽박죽.
*9/11 덧붙임. 세뇨르도 능력자, 수영 못함! 능력자는 물에 절반만 잠겨도 힘 빠짐!
> 해군이 되고 바로 열매를 먹은 것도 아닐 테고 얼마간은 센고쿠와 지내며 자랐다는 흐름에서, 해군이면 능력자 아닌 이상 수영은 기본이니까 기초부터 배우려는데 우연히 놀러와있던 가프가 자기식으로 애를 그냥 바다에 던져버린다던가. 물론 아주 깊은 곳도 아니고 섬 근처의 얕은 물이지만 어린 로시에게는 깊어 허우적거리다가 그냥 푹 가라앉아버리는 것. 물론 잠깐 간식거리 가지러 갔던 센고쿠가 돌아와서 기겁하며 꺼내주긴 하지만 그 전까지 물 속에서, 짧게. 몸이 가라앉는 느낌, 숨은 막히고 물은 차갑다. 아무리 팔다리를 움직여도 물이 온 몸을 붙잡는 것처럼 그 자리에서 아래로, 아래로. 보글보글 거품이 한웅큼 입밖으로 빠져나와 위로 오른다. 짠맛을 느끼기엔 목이 너무 쓰렸다. 이대로 죽는 걸까. 헤어져버린 혈육들이 뇌리를 스치고, 함께 했던 시간이나 미소 같은 것들이 빠르게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수중에서 뿌연 시야로 빛이 보인다. 아마 수면으로 내리쬘 햇빛. 부유하는 감각이나 그, 느껴질 리 없는 빛의 따스함이 누군가의 작은 손처럼, 괴로움에 질식하는 짧은 순간 새겨진다. 커다란 손이 작은 몸뚱아리를 꺼내어 흉부를 눌러대며 바닷물을 토해내게 하기까지, 난생 처음 떨어진 바다는 물의 기억으로 남는다.
> 이후로 가끔 물 속에 들어가 그순간의 기억을 돌이켜보는 로시난테가 보고싶다. 이젠 수영을 배워 누구보다 능숙하게 헤엄칠 수도 있고 마냥 즐기기엔 할 일도 많아졌지만, 단순히 욕조에 들어가 몸을 누이고 있는 것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수중감각이 잔류하는 거. 아직 잔일거리 많이 하는 계급일 때 바닷물에 젖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 열매를 먹은 뒤에는 두 번 다시 바닷속에 들어갈 수 없어서 아쉬워하는 거. 뱃머리에 기대어 선 채 머나먼 수평선을 바라보는 여유 속에 바다는 평화롭고, 이따금 가까워지는 갈매기 소리에 약간의 어수선함. 그 모든 것이 뭉뚱그려져 행복의 끄트머리에 있다.
> 돈패밀리 들어와선 그나마 해수면을 쳐다보는 것으로 대신하다가, 어느날 타 해적선과의 전투에서 미끄러져 배에서 떨어져버린다. 때는 밤, 사위가 어둡고 들리는 소리라곤 부상과 전투의 부산물 등지. 바닷물에 닿는 순간 끝없는 중력같은 힘이 저를 잡아당기며 전신의 힘을 빠져나가는 느낌에 몸을 크게 휘젓는 것도 잠시, 발버둥쳐봐야 떠오르지 못할 걸 알기에 코라손은 숨을 최대한 참으며 몸을 웅크린다. 수영, 못한다고 말했던가... 떨어지기 직전 눈이 마주친 세뇨르가 뛰어들어주거나 다른 누군가에게 이야기해주기를 바랄 뿐. 뭐, 둘 중 하나는 필택이겠지. 보스의 동생에다 간부이기도 하고. 다만 알고 있음에도, 힘이 쭉쭉 빨리는 기이한 오(惡)심이 영원처럼 느껴져서 검게 일렁이는 시야를 깜빡, 깜빡. 이대로 죽는 게 아닐까. 죽어버린다면, 그토록 의지를 품고 살아온 것도, 그 이전에, 기억의 저편에 깔려있는 추억도 모두 사라져 끝나버리는 걸까. 따위의 생각이 흐른다. 단순히 수중에서 숨을 참는 것도, 능력자에겐 버겁다. 의식이 곧 꺼질 촛불처럼 아슬아슬해, 저도 모르게 누군가를 부르듯 입을 뻐끔거리자 가둬둔 숨이 커다란 거품으로 부글 올라간다. 살려줘, 도와줘, ──. 그리고, 의식이 꺼지기 직전, 둥근 빛이 다가오는 기분이 든다. 밤일 텐데도 눈부시게, 언젠가의 기억처럼. 마지막 힘을 다해 손을 뻗었을 때 그 끝에 닿는 온기. 짧게 기절했다 깨어나 물을 토해내는 그의 등을 커다란 손이 토닥인다. 격하게 산소를 들이쉬는 가운데 익숙한 향기. 그가 떨어진 지점을 비추는 등불의 빛에도 속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검은 선글라스. 어느새 전투가 일단락되었는지 요란함도 한층 줄어들었다. 코라손은 기침인지 조소인지 허한 웃음인지 알 수 없는 한숨을 토해낸다.
> 이 다음부턴 비능력자인데도 맥주병이라는 것이 안그래도 허당이라는 사실과 더해져서 선상에 코라손이 나와있을 땐 꼭 감시자 겸 예비구출자 하나씩 붙어다녔으면. 가끔은 도플라밍고가 따라붙기도 한다. 순수한 걱정도 없지야 않겠지만 거의가 자기 한가할 때 심심해서 코라손 끌고 돌아다니는 거라 당사자는 질색한다. 그래도 무슨 반항이 소용있겠냐만은... 도플라밍고도 제 동생이 바다를 보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어 정 코라손의 인내가 한계에 도달할 것 같으면 뱃머리로, 또는 어디든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데리고 간다. 도플라밍고에겐 바다보다는 하늘의 풍경 쪽이 더 장관이다만.
> 어느 날 밤바다. 패밀리가 몇 달간 준비해왔던 거래가 예상을 뛰어넘는 이윤을 남기고 성사된 기념으로 선내에서 파티가 벌어진다. 최근 해군에 의한 방해가 잦았기에 더욱 값지게 느껴졌고 다들 고생 많았으니 오늘, 내일까지 푹 놀고 마시며 쉬라는 보스의 말까지. 시간이 늦었지만 흥겨운 분위기는 가라앉지 않고 누구는 술을, 누구는 야식을, 누구는 그새 방으로 돌아가 밀린 잠을, 누구는 수다를, 누구는 벌써부터 다음 거래에 대한 청사진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밤을 보내는 가운데 코라손은 진즉 배를 채우고 술병 하나를 든 채 선수에 나와있다. 다들 건배를 외치는 통에 이미 몇 잔 마셔 알딸딸하지만 이래뵈도 주량은 쎈 편이다. 난간에 팔을 얹고 숨을 크게 들이켰다 내쉰다. 짠내음과 서늘한 공기. 밤의 바다는 한 치 아래도 내다보이지 않는다.
스륵, 소리없이 다가온 기척이 옆에 선다. 기척은 없었지만 문이 열리고 판자가 삐걱대는 소리는 작게 들렸기 때문에 코라손은 그가 누군지 안다. 능력자가 되고 나서 소리에 둔감해지는 로시난테를 한심하다고 일갈하는 어느 후배 탓에, 아니 덕분에, 코라손은 제가 내지 않는 소리에 대해서도 예민하게 귀를 기울였다. 능력에 감각이 묻혀버리지 않도록 수련하고 신경을 쓰고. 여러모로 화려한 외양과 달리 도플라밍고는 행동하는 데 있어 소란스럽게 굴지 않는다. 한순간에 상대를 끝장내버리는 능력이기도 하고, 본래 실타올이라는 건 바람에 쓸려가버릴 만큼 가볍고 소리 없다. 어쩔 땐 고요고요 열매의 능력이 적용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조용하고 빠르게 뒤에서 손을 내밀기도 한다. 사람을 놀래키려 드는 듯한 행태는 유독 코라손에게 집중되어 있어, 역시 도피는 형제에게 어리광부린다니까, 몇몇 간부는 웃으며 말하지만. 아무튼 곁에 다가온 도플라밍고에게선 역시나 술냄새가 난다. 진하진 않다. 주량 조절은 기본이라는 거겠지. 코라손의 옆에 왼팔꿈치를 기대고 선 그가 훗훗 웃는다.
"밤공기를 쐬러 나온 거냐, 코라손? 안쪽에선 2차로 즉석 칵테일바가 열렸는데."
코라손은 별다른 대답 없이 오른손의 술병을 들어보인다. "이럴 땐 또 착실하구만." 아직 개봉되지 않은 병의 입구가 퐁, 매끄러운 단면으로 잘린다. 이런 데 능력 쓰지 마... 라는 의미로 곁눈질하자 어깨를 으쓱하며 병을 빼앗아들고 크게 한 모금 들이킨다. 무엇에 있어서든 우아하게ㅡ라고 해야할지, 격식을 차리는 그가 이따금 뒷골목 야수처럼 굴 때가 있다. 친 혈육이라는 건 그만큼 야차의 경계를 느슨하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잠입하는 해군 에게 있어선 달가울 테지만, 그 사실 자체가 로시난테에게 있어 불편함을 야기한다. 이래나저래나 형제이니까. ...형제. 잔잔한 밤바다, 마치 세상과 격리된 듯한 공간에서 물씬 흐르는 감상은 애수와 향수, 평상시엔 저 아래 눌러두었던 감성들이다. 술병을 코라손에게 넘기고 그가 돌아본 방향ㅡ 바다를 마찬가지로 바라보던 도플라밍고가 입을 연다.
"그러고 보니 넌 유독, 바다를 좋아하더군. 저 수면 아래 두고 온 것이라도 있는 거냐?"
가벼운 질문이 향하는 쪽을 알아차린다. 이건 '로시난테'에게다. 잠시 미동 없던 코라손이 품 안에서 주섬주섬 종이와 펜을 꺼낸다.
[바다를 좋아한다기보단]
평소보다 느긋한 손놀림을, 도플라밍고는 기꺼이 기다린다. 평상시보다 길고. 생각의 흔적이 담긴 문장이다.
[ㅡㅡ그래서인지 다시 물속에 들어가고 싶어져 가끔]
앞뒤를 상당히 잘라냈지만 의미는 통한다. 그의 형은 이해가 가지 않는 듯 입술이 다물려있다. 그야 그렇겠지. 능력자에게 바다, 물이라는 건 위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 별 것 아니라고 덧붙일까 하다가, 그만둔다. 그때의 감각은 십 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눈을 감으면 당장 떠올릴 수 있을 것처럼 가깝고, 또 멀다. 공감대가 형성될 만한 화제가 아니었기에 대화는 끊긴다. 쏴아, 물소리가 울리는 밤바다. 문득 눈앞의 물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들어 코라손은 눈을 감는다. 바람이 한층 습해진 것 같다. 길게 감았다 뜬 시야는 잠시나마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다.
[먼저 들어갈게]
저를 보는 도플라밍고에게 그렇게 써 보이고, 코라손은 방으로 돌아간다.
> 이후 별 일 없는 나날~이 지나고 어느 섬에 정착한 배. 수금을 제외하면 별다른 일이 없어 다들 개별활동에 들어간다. 그리고 도플라밍고가 이 섬의 리조트를 사들이고 개조해서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커다란 수영장을 만들었으면. "굳이 바닷물이 아니어도 괜찮댔으니 말이야." 해가 쨍쨍한 여름섬에서 한가하게 흘러가는 조각구름, 반짝이는 해수면, 찰랑거리는 담수. 미미하게 약의 냄새가 나는 건 바닷물을 정제해 가져다 쓰기 때문일까. 가만히 서서 바다를 바라보는 코라손의 뒤에서 휘적휘적 걸어오는 도플라밍고가 있고. 뭐 코라손이 덤벙거리다가 뒤로 넘어져 풀장에 빠져버리는 거지. 털코트와 모자를 스탠딩체어에 벗어두었기 때문에 그나마 셔츠와 바지 차림으로 풍덩. 그렇게 잠긴 물 속은 투명하고, 차가웠다가 금세 체온만큼 시원해진다. 보글보글 잔거품. 물에 닿는 순간부터 발버둥이 없어 그저 깊게 가라앉았다가 천천히 떠오른다. 수면 위로 고개가 들리기까지, 그 광경. 따끔한 눈을 크게 뜬다. 내리쬐는 햇빛. 밝은 사위와 따스한, 언젠가의... 데자뷰. 아아, 그래. 이건 최초의 기억이다. 최초의 감각이다. 코라손은 입을 빠끔거려, 숨을 내뱉는다. 커다란 기포가 떠오른다. 점차 떠오르던 몸이 둥실 멈추며 물 속을 가로지른다. 그리고 마지막은 도플라밍고가 뛰어들어, 코라손을 끌어올려줬으면. 몇 분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길래 기절했나 했다고, 물에 젖은 앞머리를 넘기며 그가 선글라스를 고쳐쓴다. 태양에 달구어진 바닥에 드러누워 코라손은 손을 앞으로 뻗는다. 가쁜 호흡이 가라앉고 커다란 손에 진 그림자로 눈을 가린다. 이후 번진 화장을 보고 큭큭 웃으며 닦아나줘라 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