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월른 스터디/ 이름
*프스기반, 프리은월
*그렇게 안 보이겠지만 아이 시점입니다. 머리 굵어져서 어린 날을 회상하고 있다고 칩시다...
나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봅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는 건 무척 피곤한 일입니다. 보고 싶지도 않은데 계속 보게 되니 스트레스가 쌓이는 데다, 이런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수도 없잖아요. 아주 어렸을 때에야 주위 어른들에게 더듬더듬 손을 뻗기도 했었지만 결과야 뭐, 다들 예상하다시피 처음에는 애정 결핍으로 달갑지 않은 관심을 받다가, 점점 머리에 이상이 있는 아이 취급 받고 정신병원을 오고 가느라 바빴지요. 단 몇 분의 진솔함으로 몇 년의 정신과 기록을 갖게 된 이후로는 어느 누구에게도 말을 꺼내지 않는답니다.
내가 보는 것들은 다양합니다. 흔히들 귀신이라 부르는 영체부터 시작해서 형태가 불분명한 기운이나 불행까지,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미신으로 여길 무형의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내가 보는 세상은 남들과는 꽤 다릅니다. 좀 더 다채롭고 어지러운, 색의 배합과 오물의 형태를 띄지요.
당신을 만난 건, 내가 몇 분의 실수로 막 하얀 병원에 끌려다니기 시작한 어느 해였습니다. 병원은 어둡고 축축한 기운으로 가득 채워져 있어 숨을 쉬기도 어려웠어요. 그 날도 대충 접수를 마치고 옥상으로 올라가 뻥 뚫린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무엇 하나 정 붙일 수 없는 곳이지만 푸른 하늘만큼은 마음에 들었거든요. 차가운 철제 의자에 드러누워 흰 구름이 유유히 흘러가는 하늘을 올려보는데, 어쩐지 눈부심이 강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왜 태양을 똑바로 쳐다볼 때처럼 강렬한, 그런 느낌이요. 건조해서 그런가 싶어 눈을 길게 감았다 떴고, 눈앞에는 새까만 구멍이 웅웅 소리를 내며 크기를 불리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그곳에서 떨어졌습니다. 각도로 보자면 수직으로 떨어진 셈이지만 너무나 안정적인 자세로 착지했지요. 처음에는 웬 시꺼먼 사람인가 했습니다. 한참 멀뚱히 눈알을 굴려보고서야 검은색은 구멍의 그림자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신은 처음에는 기절한 것처럼 미동 없이 서있었습니다. 당신으로부터 그 어떤 기운도 올라오지 않았기에 나는 당신이 영체인가보다,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모든 살아있는 사람은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의 색을 주위에 두르고 있으니까요. 한참이 지나서야 당신은 인형처럼 삐걱거리며─영체에게서도 뼛소리가 난다니, 제법 놀랐어요─ 몸을 돌렸습니다. 그제야 내 기척을 눈치 챈 것처럼 멈칫하더니, 돌연 휘둥그레진 눈으로 공간을 뛰어넘듯 다가왔어요. 그 기세가 아무런 색도 띄지 않은 유령치곤 강렬해서, 나는 움찔 몸을 떨었습니다. 누워있었기에 뒤로 물러나진 못했지요.
“ ──… “
당신이 내뱉은 말은 아쉽게도 내게 닿지 못했습니다. 귓가에 닿기 전 다물린 당신의 입술 사이에 막혀버렸어요. 지금에 와서 그때의 감각을 최대한 되살려 보면, 그것은 어쩌면 당신이 내게 붙인 최초의 이름이었을까. 확신에 가까운 짐작만 해봅니다.
느닷없이 나타난 당신은, 이 세상이 아닌 다른 곳에서 온 듯했습니다. 말을 꺼내려 치면 목소리가 강제로 잠겨버리는 바람에 전부 알아듣진 못했지만 적어도 당신이 다른 세상의 사람이고, 연유를 모르고 초자연적인 무언가에 휩쓸려 이곳에 떨어졌다는 것. 그리고 나를 찾으러 올라온 간호사의 무성의한 시선을 통해, 당신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나뿐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신은 이야기하는 내내 내게서 눈을 떼지 않았고, 나는 그 시선의 이유가 궁금하진 않았습니다. 다만 당신이 다른 사람들처럼 나─내 시야─를 어지럽게 만드는 기운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것만이 중요했습니다. 망설임 끝에 신세를 져도 되겠냐는 물음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지요.
그렇게 당신과 나의 짧은 여정은 시작되었습니다. 아, 여정이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을까요. 우리의 경로는 기껏해야 그 작은 동네에 한정되어 있었으니까요.
나는 당신을 형이라 부르고, 당신은 나를 무엇으로도 부르지 않았습니다. 외양으로 따지면 나보다 월등히 연상인 청년이었으니 당신에의 호칭은 그렇다 치더라도, 당신은 어째서 나를 특정하여 지칭하지 않느냐─ 하는 물음 같은 건 사실 갖지 않았어요. 나를 답답하게 만들지 않고 평화로운 대화가 통하는 상대가 있다는 사실을 태어나 처음으로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빠르게 가까워졌습니다. 적어도 심리적인 벽이 허물어지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지요.
“ 형은 왜 내게만 보여? “ 하고 물은 적이 있더랍니다. 그 전까지는 눈에 보여도 물을 엄두도 내지 못했어요. 내가 보는 것들은 하나같이 험상궂고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어서, 어린 마음에도 아, 용기 내어 물어봐도 대답해주지 않겠구나, 알 수 있었거든요. 사실 말을 거는 것부터가 얽혀서는 안 되는 일이긴 하지만, 아무튼. 당신은 왠지 내가 묻는 것을 다르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대답해줄 것 같았습니다. 난 감이 좋은 편입니다. 얕은 예상대로 당신은 나를 가만히 내려보다가, “ 글쎄, 나도 잘 모르겠구나. 하지만 난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 말해주었습니다. 무엇이 다행인 건지 또 다른 궁금증이 생기고 말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눈이 조금 슬퍼보여서 나는 그렇구나, 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옆집 사는 형과 동생처럼 친해진 이후 주위에서 바라보는 나에 대한 시선도 변했습니다. 음침하지 않고 더 사람답게 되었다나요. 그 말을 들은 당신은 정말 그런가 하는 얼굴로 나를 내려보았습니다. 그리곤 그럴지도, 하며 작게 웃었지요. 그럼 나는 너무하다고 볼을 부풀렸고, 당신은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나를 다독였습니다. 그건 내가 타인에게 부린 최초의 어리광이었습니다. 내가 읽을 수 없기에 동등하게 인정할 수 있는 상대가 내게 호의를 보인다는 건 꽤, 많이, 기분 좋은 일이었어요.
당신은 어른스럽고 한편으로는 매우 어린아이 같았는데, 그건 성격이나 성향의 문제라기 보단 이따금 유독 솔직해지는 면모에서 나왔습니다. 당신은 낯선 이 세상을 누구보다 날카롭게 파악하면서도, 내가 천진한 어린아이처럼 물으면 냉정함을 에둘러 순화시켰습니다. 나를 아이 취급한다고─맞긴 맞지요─ 화를 낼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던 건, 당신이 내가 상처 입을까 두려워 배려하면서도 나를 속이지 않으려는 마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읽지 못해도 그것을 읽어낼 수 있을 만큼.
그러나 그런 당신이 한 번 화를 낸 적이 있었습니다. 당신과 만난 이래 종종 걷게 된 공터를 지나던 중 어린 나이서부터 불량함을 드러내는 아이들에게 둘러쌓였고 그들은 나를 마구 다그쳤습니다. 어린 아이들에겐 어른과는 또 다른 끈질김과 일방적인 사고가 있지요. 땅바닥에 나뒹굴기 직전 당신이 개입했고, 그들은 내가 사람 같지 않은 눈을 하고 이상한 것이나 보는 괴물이라 외치며 도망갔습니다. 그 말에 당신이 쫓으려는 걸 막아서자 돌아온 것은 무언의 분노였습니다. 동시에 슬픔이었고. 안타까움, 자책, 미련이기도 했습니다. 어린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서만 보았던 감정의 집합체가 당신의 눈 속에 있었습니다.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꽉 주먹을 쥐고 있던 당신이 나를 끌어안을 때까지 나는 소용돌이치는 감정의 타래를 바라보았습니다. 이렇게 가깝고도 멀어… 나는 꿈속을 헤매는 기분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이별은 처음만큼이나 갑작스레 찾아왔습니다. 여느 때처럼 카운셀링을 기다리며 올라온 병원 옥상에 생겨난 푸른 구멍. 당신이 말했습니다. “ 가야 해. “ 나는 은하수처럼 아름다운 푸른색을 보고 당신을 올려보았습니다.
“ 가는 거야? “
“ 그래. 돌아갈 유일한 방도가 나타났으니까. “
“ 나, 두고 가는 거구나. “
어린아이에게도 알량한 자존심이 있던 것인지, 붙잡아봐야 인력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수순이라는 것을 무의식중에 알았는지. 나는 매달리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당신이 이곳에 나타났을 때부터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의 제어를 받지 않았으니까요. 우리는 종일 함께 지내며 미래에 대한 어떠한 기약도 하지 않았습니다. 흔히 내일 어디로 놀러가자, 가벼운 약속까지도.
“ ─── “
“ ...형? “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 소리의 울림. 무척 멀고도 가깝게 귓가에 울렸습니다.
내 이기심으로 너를 데려갈 수는 없어. 당신은 조금 눈물 젖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 이름을 줄게. 원래부터 네 것이었던 이름을. “
이곳이 네 세상이니까.
“ 프리드. “
온기가 없어도 든든한 팔이 나를 가두었습니다. 검은 그림자로 가려진 품속에서 나는 조금 바르작거리다가, 내게 이름을 내어준 당신의 등을 끌어안았습니다. 당신이 품은 습기가 내게 옮겨왔는지 내쉬는 숨이 무겁게 늘어졌습니다. 푸른 구멍이 웅웅 소리가 날 정도로 크게 벌어지자 당신은 내 두 손을 꼭 쥐었다가 떨어졌습니다. 나를 꿈꾸게 만들던 보랏빛 눈동자.
그것이 당신의 마지막 색이었습니다.
나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봅니다.
그렇기에 알고 있습니다. 그는 더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요. 그는 나를 남겨두고 떠나버렸습니다, 물에 젖은 종이처럼 눅눅하게 가슴 한켠에 달라붙은 추억과 세 글자의 이름만을 남긴 채 말입니다.
*공미포 3,316자
*메이플 월드에서 건너온 청년과 초자연적인 것들을 보는 아이, 은월과 프리드. 일부로 둘이 헷갈리게 하려고 이름도 안 썼는데 쓰다보니 프리드 말투가 너무... 애어른.... 이 돼서.... 정작 쓰고 싶은 장면을 빼버려야 했지만 아몰라괜찮아 역시 빠른 포기가 정신 건강에 좋습니다.
*글에는 거의 나오지 않았지만 배경은 프렌즈스토리 기반이에요. 정확히는 프렌즈스토리 평행세계 또는 키네시스 스토리 이전의 프스? 나중에 일일연성할 스토리PF의 프리퀄 정도로.
*기타설정은 언젠가 본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