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그레] 기승알렌생일축하해!
디그레이맨
2014.12.25 기승알렌생일축하해! 늦었지만 하하
Written by VC
" 작작 좀 쳐드시라니까 정말…!! "
제 앞으로 날아든 청구서 다발을 신경질적으로 접으며 외쳤지만, 그 말을 들어야 할 당사자는 전날 아침 호텔을 나선 후로 소식이 없었다.
*
창 밖에선 은은한 종소리와 함께 들뜬 사람들의 목소리가 자글자글 울리고 있었다. 그저 입으로 읊을 뿐인 메리 크리스마스─ 나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와 같은 말과 대조적으로 소년의 상황은 근심과 고난으로 가득했다. 그래도 사용인으로서의 면모를 꿋꿋히 유지한 채, 소년, 알렌 워커는 커다란 사탕 봉지를 들고 카운터로 다가오는 손님을 향해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어서 오세요, 얼마가 되겠습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누군가 어깨를 툭 치기만 해도 자연스레 흘러나올 접대용 메뉴얼이 아니었다면, 크리스마스 아침부터 호텔 문 앞에 가득 쌓인 청구서를 떠올리고 직장에서 이성을 잃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거두절미하고 쫓겨났을 테고. 일일 아르바이트 땜빵이라도 날이 날이니만큼 짭짤한 급여를 놓칠 수야 없는 법. 알렌은 늘어놓으면 하늘에 닿을 듯 끝이 없던 숫자를 애써 머릿속에서 지우며 주판알을 굴렸다. 손을 놀려 잡생각이 난다면 아예 정신 없이 바쁜 편이 나았다.
점장이 오전까지만 가게를 열고 집으로 돌아간다고 사전에 미리 들었기 때문에, 정오를 알리는 시곗바늘을 본 알렌은 주섬주섬 가게 문을 닫을 준비를 했다. 가게 문 밖에 달린 팻말을 Closed 로 바꾼 뒤 사람들이 구경하며 아무 자리에나 놓은 상품들을 원래 자리에 돌려놓고, 오전 내 오고 간 거래 기록을 장부와 대조하고 나니 벌써 2시간이나 지나있었다. 애초에 예상하고 다음 알바는 3시에 잡아두었으니. 알렌은 점장을 배웅에게 장부를 넘기고 종이봉투를 받았다. 오늘은 페이가 제법 쎄서 사흘 치를 한꺼번에 얻었다. 오후에 받을 몫까지 합하면 산더미 같이 쌓인 청구서 중 하나 정도는 찢어 벽난로의 땔깜으로 쓸 수 있겠지…
생각을 반쯤 놓아버리고 몸이 가는대로 움직였더니 어느 덧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_ohmy.
마지막 남은 접시를 개수대에 놓고 앞치마를 풀며 알렌은 한숨을 푹 쉬었다. 고급 레스토랑의 웨이터 자리에 구멍이 나 들어온 부엌에서 정신 없이 주문을 받아 나르고, 끝에는 줄어들지 않는 식기들을 닦는 처리일까지 맡아 한 직후라 피로가 전신에 깔렸다.
" 스승님 오늘은 들어오시려나? "
일단은 그렇다는 전제 하에, 돌아가는 길에 샴페인이나 사가야겠다. 전국민적인 축제날이 좋은 점은 모든 가게들이 어린 자에게도 관대해진다는 점이다. 와인도 한 병 달라고 할까, 싶었지만 앳된 얼굴에 샴페인을 내어주는 것만으로 감지덕지다. 당일은 가격이 확 치솟으니 어제 저녁에 미리 사둔 칠면조를 요리하고, 야채도 충분히 있었으니까 그외엔 필요한 게 없나. 돌아가서 할 일을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그리며 알렌은 레스토랑을 나섰다. 좁은 회전문을 반 바퀴 돌리자 차가운 공기가 훅 하고 볼을 감싸왔다. 동시에 하늘에서 흩날리는 눈이 콧등에 붙었다.
" 아, 눈 오네… "
눈이라곤 해도 퍼석하게 엉겨붙은 진눈깨비가 부스스 내리고 있을 뿐이었지만. 내리기 시작한지 얼마 된 지 않은 듯 바닥은 물기가 거의 없이 매말라있었다. 호텔에 도착할 때면 바닥의 흙과 섞여 질척해질 테고. 느긋하게 걸어가려고 했는데, 부츠를 더럽히지 않으려면 조금 서둘러야겠다. 습관적으로 외투 소매를 끌어당기며 금세 차가워진 손을 주물렀다.
*
방문을 열었더니 익숙한 어둠이 알렌을 맞이했다… 면 언제나와 같았겠지만 오늘은 드물게도 식탁 위로 작은 불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누군가가 있다는 의미에서는 아니고, 알렌이 아침에 나가며 미리 켜둔 전등이었다. 양초 모양을 하고 속에는 전구가 있는 전등을 반나절 이상 켜두는 일은 분명한 낭비긴 해도, 피로한 몸을 이끌고 돌아왔을 때 싸늘한 어둠만이 귀가를 반기는 게 얼마나 마음을 공허하게 하는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식탁 위로 사온 먹을거리 봉투를 내려놓은 뒤 늦은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 몸을 돌렸다,
가 멀대 같이 서있는 단단한 무언가에 얼굴을 정면으로 박고 퉁겨질 뻔했다.
" 스승님?! "
" 늦었잖아 빌어먹을 제자야. "
아니 계셨다면 제발 사람 기척을 내시라구요… 마음 속으로 절절하게 지나가는 말은 애써 눌러담았다.
" 에, 아니, 그치만 분명 오늘도… 안들어오실 거라고… "
" 됐고, 이거나 받아라. "
휙,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드는 물건을 얼떨결에 받아들었다. 점원이 수고했을 게 분명한 은색 포장지가 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말 없이 눈빛으로 이야기하는 스승에 주섬주섬 포장지를 뜯었다. 속에는 척 보기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검은 가죽장갑이 들어있었다.
" 이건…? "
어리둥절하게 물으면서 각오한, 그런 것도 모르는 멍청이냐는 스승의 따끔한 질타는 돌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 생일 축하한다. "
스승이 내뱉는 말이라고는 하늘이 무너진대도 믿을 수 없는 말을 인식하고 내 귀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가 의심해버렸다.
매끈한 가죽장갑을 손에 들고 멍하니 스승을 올려다보자, 여느 때와 다름 없이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며 이쪽에는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무뚝뚝하고 무신경하기 그지 없는 스승.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알고 있었을까. 아직 이국의 생활에 익숙해지지 못한 어린 알렌은 밤마다 사무치는 외로움에 힘에 겨워 소리 죽여 울었다는 것을. 다른 사람의 비웃음을 들을 때마다, 소중한 이가 어루만지며 괜찮다고 말해준 낙인과도 같은 팔을 부끄럽게 여기게 된다는 것을. 마나의 흔적이 남은 신체를 그렇게 여기고 싶지 않아, 화상을 입은 것처럼 우둘투둘한 붉은 손을 가리기 위해 부러 소매가 긴 옷을 골라입는다는 것을.
눈과 비가 섞여 우중충한 진눈깨비를 맞고 돌아오며 뻑뻑하게 메말랐던 눈가가 축축해지는 걸 느끼며, 포장지 채로 장갑을 들어올려 코를 가져다댔다. 진한 새 것 냄새. 그러나 한켠에 베어있는 익숙한 담배향.
스승은 그 이상의 말 없이 어둠 속에서 알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시선을 느끼고, 괴상하게 일그러져 있을 게 분명한 얼굴을 가리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하다는 말을 해야 하는데. 입을 열면 더듬거릴 것 같아서. 그리고 그런 제자를 평소와 다르게 물끄러미 지켜보는 스승이 있어서.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눈물이 날 것 같으면서도 베실베실 웃음이 비집어 나오는 건 뿌연 연기와 함께 나지막하게 내려앉는 말이 너무나 상냥한 탓이었다,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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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이나 늦어버려선 의미가 없잖아... 별 내용도 없고... 그치만 쓴 게 아까우니까 그냥 올립니다. 크로알렌이라고 생각하면서 썼는데 컾링이 보이는가 과연...;_;
크로스를 따라나선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은 알렌 워커, 1n살......은 생각해보면 마나 말투 따라하면서 정신 차린 이후로 치면 10살 내외로 쳐야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 찾아보기 귀찮아서ㅇ>-<...
여튼 알렌 생일 축하해(늦었지만)! 호시노쌤은 영영 연중하실 생각인신가요 엉엉